고대 이스라엘 풍습에서는

육체적으로 큰 장애가 있는 사람은 죄로 인해 그리되었다고 하여

사회적으로 멸시하는 흐름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많은 사람들은 이런 장애자에게 가까이 하려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회로부터 이만저만 정신적인 고초를 당한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눈이 안 보이는 맹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들 역시...

사람으로 태어났기에 입에 풀칠은 해야 생존할 수 있었습니다. 

가가호호를 직접 방문하여 동냥하는 것은 그 시대 분위기상

꿈도 못 꾸는 일이라,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거리에 나아가 

구걸하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습니다.

국가에서도 이런 이들에게 특별한 관리 조치를 내렸습니다.

그들이 입고 있는 겉옷은 공식적으로 거리에서 동냥 할 수 있도록

특별히 제작했는데 그 옷은 동냥 허가증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즉, 그런 옷을 입은 사람들만 공식적으로 동냥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 옷을 잃어버리면 동냥도 못 하게 됩니다.

하여... 특별 제작된 옷이

그들에게는 전 재산이었고, 먹고사니즘에 직결된 문제였습니다.

그 옷은 그들에게 너무나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그 옷을 입었다는 것은...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오' 라는 낙인이기도 했습니다.

즉, '동량은 죄인들만 하는 것이다'라는 프레임이 팽배했습니다.


수님의 공생애 당시...

여리고 근처에 사는 바디메오란 맹인이 등장합니다.

바디메오 역시 태어나면서부터 맹인 된 매우 불쌍한 자였습니다.

그 역시...

죄인이란 낙인이 찍혔기에 맹인에게 부여된 옷을 입고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였던 여리고성 어귀에 앉아 구걸하는 것이

그의 모든 일과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됩니다.

그분은 병도 고치고, 여러 기적도 행하며, 이 땅의 사람들을

구원시키러 오신 메시아란 소문이 파다했습니다. 

이 소문을 듣고 바디매오는 흥분하여 마음이 들뜨기 시작합니다.

병도 고치고, 기적도 행하고, 구원도 시킬 메시아라면...

분명히 자신의 눈도 뜨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 들떠있던 상황에서 마침내...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여리고성을 지난다는 소식을 접하게 됩니다.

그는 더욱 흥분하여 예수님이 빨리 오시기만을 기다립니다.

마침 기다리고 기다리던 예수님께서

지금 제자들과 더불어 그 옆을 지나간다는 웅성거림을 듣고  

바디매오는 지체없이...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마가복음 10장 47절)


예수님을 몇 번 목이 터져라 불렀으나 

예수님은 못 들은 척 하고 그냥 지나가려 하셨습니다.

바디매오가 큰 소리로 계속 예수님을 부르자

이에 예수님의 제자들은 소란으로 간주하여 그를 가로막고

잠잠하라 꾸짖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에 전혀 굴하지 않고...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라며 더욱 크게 외칩니다.

바디매오의 입장에서는, 지금 이 기회가 어물쩡 휙~ 지나면...

앞도 못 보는 처지에 

어딜 어떻게 가서 다시 예수님을 뵈올 기회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사생결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마가복음 10장 48절)


이 땅의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전부 보고 들으시는 예수님이... 

바디매오의 간절한 부름을 못 들어서 그냥 지나가려 했을까요?

크게 소리지르지 않아도 그의 중심까지 다 아시는데 말입니다. 

마가복음에는 예수님을 부르는 장면이 딱 두 번 등장하지만

실제 바디매오는 펄쩍펄쩍 몸부림질 치며 자신의 간청에 

응답할 때까지 계속 간절히 불렀음에는 누구나 추론이 가능합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바디매오의 부름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여리고에 오기 전부터 맹인 바디매오가 그곳에 있을 거란 것도

벌써 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디매오의 외침을 듣고도 못 들은 척 하시며

그냥 지나가려는 모습을 보였던 것입니다.

여기서 특이한 점은...

바디매오는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칭하며 외칩니다.

왜 다윗의 자손이라고 했을까요...

메시아는 다윗의 허리에서 나온다는 성경의 말씀을 알았고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 부른 것은 그분이 메시아란 사실을

분명히 인정하고 믿었다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은...

바디매오가 끈질기게 외치는 절박함을 보시고 제자들에게 일러 

가까이 불러오라고 명하십니다. 

왜 명하십니까? 너무나 간절함... 그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서 바디매오는 너무나 기쁘고 흥분되어...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마가복음 10장 50절) 


얼마나 기뻤으면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다가왔겠습니까... 

그 당시 맹인의 인증서와 같은 겉옷은 맹인들에게 전 재산과 같아서 

그 옷을 입지 않으면 거리에서 동냥도 못 하고 굶어 죽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너무 기쁜 나머지, 그에게 최고의 가치가 있는 겉옷을 던져버리고

지체 없이 허겁지겁 예수님께 나아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난 것이, 자신의 겉옷보다 훨씬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분으로 인해 눈을 뜨면, 겉옷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예수님은 그에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마가복음 10장 51-52절)


결국, 맹인 된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간절히 찾았으며, 또 그분께서 

바디매오의 눈을 열어주셨고, 그는 기뻐하며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글로만 보면 단순한 과정이지만,

영적으로 보면 너무나 중요한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이 의미에 대하여는 결론부에서 말씀드립니다.


윗글에서 무엇이 보입니까... 

그저, 맹인 된 바디매오의 믿음을 보시고 구원자이신 예수님께서

권능으로, 그의 눈을 뜨게 하셨구나... 라고만 이해했다면 

나는 복음을 받은 자가 아닌, 그냥 성경을 읽은 자가 됩니다.

즉, 성경 속에 수없이 기록된...

권능으로 베푼 은혜의 에피소드 중 하나로 치부한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이해하면 절대 안 됩니다.


요즘, 많은 선생들이 바디매오가 예수님에 대한 믿음 때문에

눈을 열어주셨다는 말만 할 뿐... 그의 겉옷을 버리면서까지

간절히 예수님을 구했다는 것에 대하여는 입을 닫습니다.

그것은 생명을 담아 실상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대략적 줄거리를 집약하여 강의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르치고 있다면, 복음을 헛되이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진짜 중요한 사실은...

전 재산과 같은 겉옷을 버리면서까지 예수님을 찾은

바디매오의 간절한 구함이 진짜 중요한 핵심입니다.

눈이 떠지길 원한다는 것은 단순히 세상을 보고자 함이 아니라,

태어나면서부터 맹인이었으므로 죄인이란 낙인이 찍혔기에

죄인의 낙인에서 벗어나고자 하고픈 절박함의 표현입니다.

우리가 '오직 믿음 믿음' 하며

믿음이 제일 중요하다 하겠지만, 막연히 인식하는 믿음과

바디매오의 실제 믿음은 분명히 다른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디매오가 입었던 겉옷은 표면상으로 보면 그의 전 재산이지만 

영적인 의미로는 그가 죄인의 표식임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옷을 훌훌 던져버리고 예수님께 득달같이 다가왔습니다.

이는 곧, 죄를 벗어던지고...

예수님께 다가와 영이 회복되는 장면이 보이지 않습니까? 

바디매오가 예수님에 대하여 들은 소문만 믿고 

입술로만 주님을 믿노라 했다면 그는 전 재산인 겉옷까지

미련 없이 던져버리며 예수님께 다가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바디매오의 겉옷은 죄의 상징...

즉, 지금 우리에게 뿌리박힌 모든 죄성을 의미합니다.

죄인이라 낙인찍힌 바디매오와 우리의 처지가 무예 다르겠습니까...

우리 역시 바디매오처럼...

죄의 겉옷을 입고 있는 같은 죄인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이 맹인(죄인)들이 있는 여리고 성을 지나간다는 것은

죄인 된 우리에게

복음으로 찾아오셨다는 것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인 성경을 통하여... 맹인 된 바디매오와 같이

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그런 간절함이 실제 나오고 있습니까?

이것이 가장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바디매오와 같은 그런 간절한 모습이 없다면...

나는 그저 구원만 받아보고자 예수님을 믿노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진정으로 다가가고자 하는 사람들은

바디매오와 같이 겉옷(죄 된 육의 습성들, 자아, 세상의 미련)을

다 벗어던지고자 하는 분명한 결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버리길 꺼리며 고스란히 간직한 채 주님을 믿노라 하는 것은

절대... 바디매오와 같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것은 계산되고 꾸며진 가짜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은 허상이므로 주님께서 절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우리가 겉옷마저 단호히 버리려는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바디매오와 같은 그것을 믿음으로 인정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할 장면이 있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몇 번 불렀는데... 

예수님은 모르는 척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별 관심이 없나보다 하며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중간에 지치고 실망하여 포기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바디매오는 주변 사람들이 잠잠하라는 훼방에도 불구하고 

더욱 소리높여 예수님을 간절히 찾았다는 사실입니다. 

얼마나 갈급했는지 도무지 포기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더욱 소리높여 외치자 결국 예수님께서 그를 데려오라 허락합니다.

바디매오가 몇 번을 간절히 찾았겠습니까...

응답할 때까지 절박한 마음으로 목이 터져라 외쳤을 것입니다.

자신의 전부였던 겉옷까지 포기할 정도면 당연한 각오입니다.

좋은 진주를 발견했는데 겉옷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바디메오의 예에서 보듯... 우리가

주님을 어찌 만나야 하는지를 매우 현실적으로 증거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을 지켜보며 우리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가만히 있어도

주님의 은혜로 다 저절로 알아서 된다는 가르침은 거짓입니다.

그것은 애초에 자기를 부인할 맘조차도 없는 자의 마음입니다. 

그 달콤한 가르침만 넋 놓고 의지하다가는 그날에 대성통곡합니다.

바디매오가 겉옷을 입은 채, 가만히 있는데

예수님이 다 알아서 다가오시며 그의 눈을 열어주셨습니까?

우리가 자기를 부인하려는 결단도 없이 입술로만 주여주여 하는데

쉽게 성령을 받아 저절로 죄가 사해졌습니까?

그러나 적어도 현대 교회는 그리 가르칩니다.

그래서 머리의 혼만 깨일 뿐, 심령이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신을 부인하고(죄의 겉옷을 벗길 결단하고) 

바디매오 처럼 간절히 주님을 찾는 자에게 찾아내게 하시며,

바디매오 처럼 간절히 주님을 구하고자 하는 자에게 주시고,

주님을 향해 간절히 두드리는 자에게 열리도록 허락해주십니다.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중략....

너희 하는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누가복음 11장 9-13절)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감을 따려고 하는 자에게 감(성령)을 주신다고 합니다.

그저, 자기 부인의 결단도 없이 입만 벌리고 은혜로 다 된다는

영적 게으른 자에게는 감(성령)을 안 주신다는 뜻입니다.

감을 따려고 한다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자신을 부인함... 자신에게 붙어있는 육적 모든 죄의 속성을

단호히 포기하고 돌이켜 회개하며 성령을 받고자 하는 결단... 

그리고 입술만의 가벼운 결단이 아닌, 바대매오가 옷을 버리듯

실제, 결단한 대로 따라가려는 모습... 바로 그런 것입니다.

바디매오 처럼...

이런 실질적 결단이 없으면 주님은 응답하시지 않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태복음 16장 24절)


바디매오가 눈 뜨는 장면은...

단순히,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의 행적을 기록한 말씀이 아닙니다.

맹인 된 바디매오가 등장하여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는지 그 과정은

괭장히 큰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바디매오(우리 자신)

다윗의 자손 예수여!!! (이 죄인이 주님을 간절히 구합니다.)

겉옷을 던져버리고(나의 모든 것을 단호히 부인하고)

눈이 떠지길 원하나이다. (영이 깨어나길 원하나이다.)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거듭난 후 그분을 따름)


이처럼... 복음에는 단 하나도 그냥 쉽게 흘릴 내용이 없습니다.

모든 내용에는 큰 의미가 있고 귀한 생명의 비밀이 숨어있습니다.

이런 깊은 비밀이 마음에 들어오고, 이 사실이 내 심령을 흔들어 

바디매오 처럼 그 길을 가겠다고 결단해야 복음을 받은 것입니다.


부디... 중간에 포기하지 마시고

바디매오 처럼 단호히 결단하여 죄의 겉옷까지 벗어 던지고 

생결단의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을 구하여야 합니다. 

영적 맹인 된 우리 역시, 지금 살아 숨 쉬는 이 기회의 때가 지나면

더는 주님을 구할 기회가 없습니다.

복음을 접하고 있는 지금이 바로 바디매오와 같은 기회입니다.

제발... 마음을 굳게 하시고

성령으로 회복되는 귀한 분들이 되시길 간절히 권면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