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누구나 복 받기를 원한다. 특별히 한국인들의 복에 대한 염원은 대단하다. 밥상에도, 수저에도
심지어는 밥그릇과 이부자리에 이르기까지 복(福)자를 새겨 놓음으로써 복 받는 것이 얼마나 소원인지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복’이란 ‘행복’과 동의어로 본다. 구약에 있어서 ‘복’이란 단어는 אשׁר(에쉐르)를 사용한다.
אשׁר(에쉐르)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복을 말하며 번영과 행복의 주관자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총의
적극적인 발현 (發現)을 의미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영․육간의 복을 의미하는 אשׁר(에쉐르)는 ‘복’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해서인지 성경에 쓰일 때는 “ ~의 복들” 이라는 복수 연계형(구성형)인 (아스레)가 사용되어 있으나
모두 “복(시1:1, 2:12, 32:1~2, 33:12)”으로 번역하고 있다. 또 אשׁר(에쉐르)는 “복되다(시72:17, 잠3:18,
말3:12, 아6:9), 복을 받다(시41:2), 기쁘다(창30:13), 똑바르다, 성공하다 번영하다” 등으로 번역되는
אָשׁר(아솨르)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으며, 70인경은 אשׁר(에쉐르)를 μακαρισμος(마카리스모스)로 번역
하고 있다.
신약성경에서 μακαρισμος(마카리스모스)라는 명사는 “행복(롬4:6, 4:9), 복(갈5:15)”으로 번역되어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하심을 힘입어 의롭다함을 받게 된 사람이 받은 복을 의미하는 μακαρισμος(마카
리스모스)는 “복이 있다(눅1:48), 복되다(막5:11)”라는 동사 μακαριζω(마카리조)에서 파생된다. 나머지
대부분의 다른 곳에서는 “복된, 축복된(마5:3...)”이라는 형용사 μακαριος(마카리오스)가 사용되어졌다.
그 외에도 히브리어에는 땅의 복, 다시 말해서 분복을 의미하는 קlj(헬렠)이라는 단어가 있다. קlj(헬렠)은
“분복(전2:10, 전5:18, 전9:9), 상속(신18:8), 분깃(창14:24, 삼상30:24), 기업(느2:20), 산업(시16:5, 미2:4)”
등의 의미로 번역되어 있다. קlj(헬렠)은 “(땅이나 분깃을) 나누다, 분배하다(수14:5, 18:2, 22:8, 잠17:2)”
등의 뜻을 지닌 (할랔)에서 파생되었으며, (할랔)은 다분히 영적인 의미보다는 육신적인 평탄(사57: 6)을
의미하고 있다.
헬라어에서는 (헬렠)과 동의어로 ευδαιμονια(유다이모니아)를 사용한다. ευδαιμονια(유다이모니아)는
“좋은”이라는 뜻을 지닌 ευ(유)와 “귀신들”을 의미하는 δαιμονια(다이모니아)와의 합성어로서 영적인
복과는 관계없는 복, 즉 땅의 복을 의미한다. 이것은 대부분의 불신자들이 추구하는 복의 개념으로 문자
적인 의미는 “좋은 귀신들”이라는 뜻이다.
사실 좋은 귀신이란 없다. 다만, 귀신은 좋은 것처럼 보이는 육신의 건강, 돈, 명예, 성공 등 땅에 속한 것
들을 일시적으로 주어 가장 귀중한 창3장 사건의 해결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비밀만
모르도록 유도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한 그리스도인들은 하늘의 신령한 복을 사모하고
전파하되, 땅의 복을 의미하는 ευδαιμονια(유다이모니아)정도는 뛰어 넘을 수 있어야 한다.
실제로 성경에서 강조하고 있는 “복”이란 창 3장으로부터 빚어진 온갖 저주와 재앙과 지옥권세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며, 사단․마귀의 손아귀에서 빠져 나오는 것을 말한다.
시32:1~2에는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바울
역시 롬4:6~8을 통하여 '허물의 사함을 얻고 죄의 가리움을 입는 길'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음을
보여 줌으로써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복된 자임을 말하고 있다.
또한 시133:3에서는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복은 곧 영생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다.
요17:3에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라고
기록되어 복은 영생이요, 영생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는 사실을 말함과 동시에, 요일5:12에선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라는 분명한 말씀
을 통하여 참된 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언급하고자 하는 것은 예수 믿는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한데도 어려움이 다가오는 이유
에 관한 내용이다. 지면 관계로 구체적인 내용을 모두 기록할 수는 없으나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바로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인정받는 자를 만들어 하나님을 증거하는 그릇이 되게 하기 위함이다.
헬라어에서 “인정받는 자(롬16:10, 고전11:19, 고후10:18, 딤후2:15, 약1:12), 옳은 자(고후13:7), 칭찬 받는
자(롬14:18)”로 번역된 형용사 δοκιμος(도키모스)는 “시련(고후8:2), 연단(롬5:4, 빌2:2)”이라는 명사
δοκιμη(도키메)와 같은 어원인 δοκιμαζω(도키마조)에서 출발한다.
δοκιμαζω(도키마조)는 “시험하다(눅14:19, 고후8:22, 히3:9), 증명하다(고후8:8), 연단하다(벧전1:7),
인정하다(고전16:4)”라는 뜻을 지닌 동사이다.
이처럼 “연단”과 “인정받는”이라는 단어들이 같은 단어 군에 속해 있고, 같은 어원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영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이것은 시련과 연단을 거친 후 정금 같은 믿음을 지녀 하나님과
사람 앞에 인정받는 자일 때 세계복음화의 올바른 주역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이런 자야말로 고난 중에 있는 자들과 복음 없는 불신자들을 체휼할 수 있는 것이며 사단에게 눌린 모든
자들을 위해 기도하며 복음전파에 자기 생을 바칠 수 있게 된다.
결론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 문제를 해결 받고, 운명과 사단에게서 해방된 사람이 참 복을 받은
자이며, 더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위해 고난을 당할지라도 신앙을 지키며 시련과
연단을 통과하여 인정받음과 동시에 하나님의 절대적인 인도하심에 붙잡혀 복음을 위해 쓰임 받는 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심을 기억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