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타기 모험가는 메어 놓은 줄 하나를 의지해
높은 절벽과 절벽 사이 혹은 강이나 폭포 위를 건너곤 한다.
언젠가 공중에 뜬 두 기구 사이에 줄을 메고 곡예 하듯 건너는 것을 보았다.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오금이 절이는 광경이었다.
범인의 눈엔 무모한 행동이요, 무의미한 것으로 보인다.
도전이라 하나 한줄 가닥에 생명을 담보하고
어떻게 그런 모험을 할 수 있는 것일까?
믿음으로 하는 것일까?
신념 혹은 무개념으로 하는 것일까?
믿음과 신념이 없었다면 그런 도전을 할 수 있었을까!
방식에 따라 신뢰와 신념으로 혹은 의심과 불신으로 생각 없이 살기도 하지만
결국 사람은 믿음과 신념의 토대를 바탕으로 살기 마련이다.
신앙이 있든 없든 마찬가지다.
만일 줄타기 모험을 하는 사람이 자신이 매거나 타고 있는 줄이
자신을 지탱해 줄 것이란 믿음과 줄을 타고 건널 수 있다는 신념이 없었다면
그 일을 할 수 있었을까?
그렇다.
내용과 분량의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기본적인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있다.
비행기를 탈 때 그것이 목적지에 자신을 실어다 줄 것이란 믿음을 전제하고
몸을 맡기지 않는가!
믿음과 신념은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도 긍정적인 결과도 가져다준다.
그리고 믿음과 신념을 가지고 말하며 사는 사람들이 믿음직스럽게 보이기도
실제 큰일을 해 내는 것을 본다.
그래서 연단은 정금을, 훈련은 명인을,
신념은 기적을 낳는다 하는 말이 있는지 모르겠다.
스위스를 여행하던 미국 한 청년이 알프스 산을 지나는데 심한 갈증이 느껴졌다.
마침 맑은 폭포를 발견하고 그 물을 시원하게 마셨다.
고개를 들어보니 “poisson”이란 게시판이 보여 “독”을 마셨다는 생각이 들었다.
갑자기 하늘이 노래지더니 구역질과 함께 열과 설사가 나며
배가 아프고 얼굴이 창백해졌다.
급히 가까운 마을의 병원을 찾아가 진찰을 받았다.
의사가 아무 이상이 없다 했다.
하지만 증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보았던 의사가 청년에게 이유를 물었다.
청년이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그 이유를 알게 된 의사 왈
“그 폭포의 물은 독이 없고 맑고 깨끗한 물입니다.
여기는 미국이 아닌 프랑스입니다.
poisson(프랑스어로 생선)을 poison(영어로 독)으로 잘못 보신 겁니다.”
청년이 그 말을 듣자 감쪽같이 나았다.
독이 그를 아프게 한 것이 아니라, 그의 믿음과 생각 이었던 것이다.
신라 고승 원효가 불법을 공부하려고 당나라로 유학을 가는 길이었다.
밤이 되어 어느 동굴을 발견하고 잠을 자다가 목이 말라
잠결에 시원하게 물을 마셨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곳은 동굴이 아닌 무덤이었고
자다가 마신 물은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이었다.
동일한 동굴이 밤에는 포근한 잠자리 낮에는 무서운 무덤이요,
밤에는 시원한 물, 낮에는 해골에 고인 끔찍한 물이 되었다.
그 순간 큰 깨달음을 갖게 되었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인식하는 모든 것은 마음의 작용이다)’
유심소작(有心所作: 모든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
그의 마음에서 나온 깨달음이요, 신념이었다.
하지만 믿음과 신념은 미묘한 관계를 가지고면서도
많은 차이가 있어 많은 사람들에게 혼돈을 준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이며 신념은 무엇일까?
일반적인 의미로 이는 ‘믿는 마음, 그렇다고 여기는 바’라 한다.
그러나 종교적인 면을 살피면 그 뜻은 완전히 달라진다.
믿음은
‘신과 같은 성스러운 존재를 신뢰하고 복종함이다.’
성경은 믿음을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
‘말씀을 들음에서 나는 것’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은사요,
선물’이라 정의 한다.
이에 반해 신념은
‘어떤 사상이나 명제 ·언설(言說) 등을 적절한 것으로서,
또는 진실한 것으로서 승인하고, 수용하는 심적 태도’라 한다.
그래서 믿음은 신앙이 될 수 있으나 신념은 신앙이 아닌 철학이요 집념이 된다.
믿음은 절대타자를 신념은 자기중심을 의존한다.
믿음은 절대 진리를, 신념은 경험과 지식을 신뢰한다.
믿음은 신으로부터, 신념은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믿음은 계시에서 신념은 지적 정서에서 출발한다.
믿음은 신과 생명의 교통을 하나 신념은 자신과 교통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힘을, 신념은 자기의 힘을 의존한다.
믿음은 어리석게 보이나 무한한 힘이 있고 신념은 지혜롭고
강하게 보이나 쉽게 무너진다.
믿음은 생명을, 신념은 종교성이나 철학사상을 낳는다.
믿음은 하나님의 의를, 신념은 자신의 의를 이룬다.
믿음은 하나님을, 신념은 자신의 원리를 따른다.
믿음은 스스로 자랑하지 않으나 신념은 자부심을 느낀다.
믿음은 하나님이, 신념은 내가 할 수 있다 한다.
믿음은 영원한 것을, 신념은 금세의 것을 구한다.
믿음은 불변하나 신념은 변하고,
믿음은 역사하나 신념은 신화와 이론을 만든다.
믿음은 진실이나 신념은 모조요.
믿음은 하나님 중심이나 신념은 자아중심이요,
믿음은 영혼에, 신념은 이성과 감성에 호소한다.
믿음은 신적권위를, 신념은 인적권위를 바탕으로 한다.
믿음은 신본주의이나 신념은 인본주의요,
믿음은 창조주를, 신념은 피조물을 갈망한다.
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념은 신학이나 교리를 배움으로 생긴다.
믿음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확신이나 신념은 경험과 교육에서 얻는다.
평생 신앙생활 해도 믿음과 신념 사이에서 중심을 잡지 못한 사람이 있다.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는 매우 중요하다.
때로 신념도 유익하지만 믿음에는 신념이 해가 될 수도 있다.
신앙생활에는 신념이 아닌 믿음이 필요하다.
나는 믿음의 사람인가 신념의 사람인가? 줄타기가 아닌 반석에 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