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경기'를 말할 때, 이 시기가 하루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란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이 불경기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우리가 고난 중에 있으면 시각이 자꾸 좁아진다. 
하지만 좀 더 큰 하나님의 시각을 가지고 분석할 줄 알아야 한다.

불경기에는 분명한 뜻이 있다.


창세기 41장의 요셉과 가족들의 만남을 보라.
하나님께서 기근이라는 환경을 통해서 요셉과 가족들이 만나도록
이끌어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기근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
즉, 야곱 일가를 애굽으로 옮기셔서 그곳에서 430년 동안 있다가
출(出)애굽하게 만드셨다.
그 모든 과정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이루어졌다.


예수님이 태어난 시기 직전에 로마 황제가 호적령을 내렸다.
호적령을 왜 내렸을까? 사람들은 호적령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가면서 고향으로 갔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도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내려갔다.


미가서 5장 2절에,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나온다고
기록된 것을 생각해보라.
예언의 성취이다. 바로 그곳에서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환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다. 
그러므로 단순하게 이 불경기를 고난이라고 생각하지 말라.
대체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는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실 것이 무엇인지를 빨리 깨달아야 한다.


지금 당신에게 가족의 문제나 개인적인 문제, 교회에 매우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하자.
그런데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풀리지 않던 그 문제가
고난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리고 부르짖는 중에 풀릴 수 있다.


하나님은 위기 속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게 만드신다.
그것을 통해서 삶의 근원적인 문제를 다 풀어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루시려는 일들을 깨닫고,
그것을 받아들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고난에는 내 뜻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억누르는 힘이 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기 전에는 자기 뜻과 자기 의지대로 할 때가 많다.
웬만큼 이야기해서는 "내 길이 옳다" 라고 소리치며 말을 듣지 않는다.


그런데 고난이 오면, 내 의지, 내 힘이 다 없어진다.
고난은 우리에게 절제력을 주고, 쓸데없는 것을 다 내려놓게 만든다.
그래서 본질을 붙들게 만든다.
가장 중요한 것을 붙들게 만든다.


고난과 불경기는 '내 능력으로 문제 해결할 수 없다,
내 능력으로 돈 벌 수 없다, 내 능력으로 병 고칠 수 없다,
내 능력으로 깨끗해질 수 없다' 라는 것을 인정하게 만든다.


자신의 욕심을 절제하면서 있는 모습 그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 앞에 나왔더니 주님이 나의 삶의 모든 것들을 채워주시고, 
치유해주시고, 일으켜주셨다는 것이 믿음의 체험이다. 
지금 우리 삶의 가장 큰 영광은, 자기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삶을 통해 열매를 거두는 것이다.

불경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불경기 가운데 자신의 실력을 기르자.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붙들기를 바라신다.
자기 절제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만 붙들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