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곤 (한신대 신학대학원장·구약학)
시편 121편에서 시인은 산을 쳐다보며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고 묻고 있다.
그러나 이 물음에 대해 성서는 시인의 자문자답 형식을 빌어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야훼로부터 온다”라고 말한다.
이 문답은 실로 성서적 신앙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을 신학적으로
매우 분명하게 요약해 정리한 것이다.
우선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라는 물음에서
우리는 이 질문이 인간의 가장 실존적이며
가장 종교적인 물음이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그러나 이 물음을 `산을 향하여' 던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우리는 이 질문에서
`인간실존의 궁극적 질문에 대한 대답을 기대할 곳이 산이 아닌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산은 이 물음에 대해 침묵할 뿐이다.
산이 인간에게 도움을 줄 수 없다.
단지 “천지를 지으신 야훼로부터 구원이 올 수 있을 뿐”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산이 구원을 베푸는 신일 수는 없다.
물도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그 어떤 신일 수 없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일 뿐이다.
산을 가리켜 우리에게 구원을 베풀 신이라고 말해서는 결단코 안된다.
구원은 오직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 야훼로부터 올 뿐이라고 시인은 말한다.
어째서 그런가.
그 대답은 하나 뿐이다.
`모든 피조물은 그를 창조하신 창조주 안에 있을 때만 진정으로 안전하며
가장 확실한 구원을 보장 받는다'는 대답이 거기 있다.
마치 어머니의 품에 안겨 젖을 빨고 있는 아기가 가장 평화롭듯이.
창조주는 졸지 아니하며 피조물인 우리를 지키신다.
더군다나 이교의 신들처럼 잠잘 수는 없다.
창조주는 피조물의 곁을 결코 떠날 수 없는 `그늘'이다.
그러므로 낮의 해도,밤의 달도 창조주의 허락없이는 그를 해칠 수 없다.
우리의 모든 출입을 창조주는 지켜보신다.
그러므로 모든 피조물은 진정한 도움을 창조주에게 구해야 한다.
피조물이 자신의 구원을 같은 피조물로부터 찾는다는 것은
헛된 일이요 어리석은 일이다.
그러므로 시인은 산을 향하여 도움을 찾았으나 산은 단지 침묵할 뿐이며,
천지를 지으신 분 야훼로부터만 도움이 온다는 성서의 답변만 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