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 
이 말씀은 정답 중의 정답입니다. 

그러나... 
100% 맞는듯한 이 말씀을 어찌 이해하냐에 따라 
지옥이 될 수도있고, 천국이 될 수도 있습니다. 
믿는다는 의미 속에는... 
반드시 성령으로 거듭남을 전제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도 거듭남도 없는 사람이, 
이 말씀에 대하여 혹은 여타 성경의 모든 말씀을 알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에게 강제 적용시켜 믿음이라 단정해버리면 
정말 빠져나오기 힘든 마귀의 깊은 덫에 걸려듭니다. 

교리나 성경에 대하여 알고 동의했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설교를 통해 알고 인정했다고 믿음이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현대 교회에서는 
덫에 걸려든 이런 현상이 흔한 일상이 되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이를 설명하려면 믿음으로 의롭게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내가(육의 죄 된 속성, 자아)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열매)이 사람을 통해 삶으로 나오는 것...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즉, 내가 죽고 주님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 
정말 거듭나면 사람이 완전히 바뀝니다. 
성령님이 내 안에 들어오셨는데 안 바뀔리가 있겠습니까... 
거듭남도 없이, 나는 주님을 믿었기에 의로워졌다고 하면 
교리적 이론만을 머리에 가두고 동의만 한 것을 
믿음이라 굳게 확신하기 때문에 위험한 독이 됩니다.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에 대하여 아는 인본적 지식을 소유한 것뿐입니다. 
그 지식도 올바른 성경적 본질이 아닌, 
사람이 만든 교리에 그 가치를 둔다면 더 위험합니다. 
하여, 마귀가 속이는 허상의 믿음에 속기 십상입니다. 

제가 믿노라 하는 분들을 참으로 다양하게 만나봤습니다. 
대부분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고 하는 분들입니다. 
이분들에게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구원을 확신하면서도 믿음의 삶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즉, 당연히 있어야 할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은 없고 
여느 이방인들과 거의 구별이 없었습니다. 
같은 교인들 앞에서는... 그럴듯하게 믿는 자다운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부담 없는 사석에서는 육의 모습이 바로 나옵니다. 
이는 바리새인의 회칠한 무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정말 믿노라 하는 성도는 공석이나, 사석이나, 가족이나... 
익명의 인터넷 공간에서나 모습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은 
곧, 그 믿음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런데... 이런 사실에 대하여 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교리 주의로 왜곡된 믿음이 이렇게 만들었습니다. 

그렇다면 교리 주의가 왜 위험한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틴 루터가 엇나간 가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일으킬 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를 매우 강조합니다. 
그러나 그 시대의 교인들은... 
이신칭의 이론에 대해서만 열광하며 받아들였을 뿐, 
이신칭의에 대한 근본적 본질에 대해서는 귀를 막았습니다. 
그 결과로 인해... 
종교개혁 후, 많은 교인들이 교리 놀이에만 물들어 
가톨릭과 진배없이 매우 타락하는 악한 열매로 나타납니다. 
가톨릭 시절처럼 영성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단지, 가톨릭과 교리만 다를 뿐... 
실제의 삶은 전혀 거룩하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이신칭의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종교개혁을 했는지 그 이유를 허무하게 만들었습니다. 
교인들의 영성은 전혀 변하지 않고... 
단지, 가톨릭과 교리만 체인지 된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으로 인해... 
루터도 말년에 죽을 때가 되어 이신칭의 이론만 강조하고 
이신칭의의 진짜 본질적 배경이 되는 거듭난 믿음으로 인한 거룩한 삶이, 
의로움이란 사실을 강조하지 않은 것에 대하여 크게 통탄하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루터의 이신칭의 이론은 현대 교회가 목숨처럼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된 진리와는 전혀 다르게... 
교회는 이 땅의 빛과 소금이 아닌, 더욱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고, 
이방인들로부터 개독교라 조롱받는 지경까지 되었습니다. 
교리는 그럴듯한데, 왜 이런 절박한 상황이 되었습니까... 
가르치는 선생도 그렇고, 듣는 교인들도 그렇고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는 이론에만 열광할 뿐, 
실제는... 
영성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적이 없었다는 의미입니다. 
그게 가장 큰 원인입니다. 
왜 이런 원인이 나타났습니까... 
교회 입교식 때 주님을 입으로 시인했다는 걸 근거 삼아 
이신칭의가 완성되었다고 확정시킨 게 문제였습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10절) 

성령으로 아니하고는(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린도전서 12장 3절) 

이천 년 전 초대교회 시절에는... 
입을 열어 예수님을 우리의 구세주로 시인한다는 것은... 
목숨을 걸지 아니하면 결코, 시인할 수 없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면 
무조건 잡아다 죽이던 무서운 시절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성령으로 거듭난 자가 아니면 
결코... 예수님을 입으로 시인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은 철저히 묵살하고 
막 밀어붙이기식으로 시인을 행하니 
현실적 실상에서 그 폐해가 고스란히 악한 열매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저 이론만 되풀이하며 말로만 다 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이래서 열매는 그 믿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밝히는 절대적 촉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 시점에서 분명히 기억해야 합니다. 
이론만 낭자(狼藉)하고 말 뿐인 믿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의롭게 되면(거듭나게 되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거룩한 모습이 열매로 나올 수밖에 없는데 
의롭게 된 적이 없으니 거룩한 모습이 나올 리 없습니다.
이게 바로... 거룩의 삶은 율법적 행위라 배격하고 
이론만 강조하는 교리 주의의 치명적인 함정입니다. 
믿음의 실상을 쫓는 게 아니라, 허상만 좇는 것입니다.
 왜 그런지 근본적 이유를 아십니까? 
교리화시킨 것까지는 좋았으나, 
실상의 삶에 적용하는 것이 귀찮고 싫었기 때문입니다. 
육적인 삶에 방해가 되는 좁은 길보다 넓은 길이 좋았고, 
넓은 문이 좋았으며, 자기를 부인하기 싫었고, 
은혜의 말만 앞세워 자신의 육적 삶을 정당화시키며 
무서운 지옥을 면하고... 구원만 받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즉, 이방인의 속성적 모습을 벗기 싫어 그대로 유지하며 
편하게 신앙생활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왜곡된 거짓 진리만 가르치는 
선생 두기를 좋아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따르리라 
(디모데후서 4장 3-4절) 

다시 말씀드리자면, 주님과 세상에 양다리 걸치고... 
편하게 구원받으려는 불편한 진실이 숨어있는 것입니다. 
이렇듯... 실질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려 하지 않고 
육의 속성을 더 좋아하며 교리에 대해 아는 것을 믿음이라 여겨 
말로만 다 하려고 하니 
근본적으로 거듭나 의롭게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구약 시대의 홈리와 비느하스가... 
평소 영적 거룩함의 믿음도 없이, 
악행에 젖어있었으면서도 성궤만 앞세워 
블레셋과의 전쟁을 쉽고 편하게 이기려고만 했던 것처럼... 
마치, 현대 기독교인들이 거듭남도... 거듭나려는 맘도 없이 
이방인과 전혀 다름 없이 살면서 예수님, 십자가, 믿음, 은혜라는 
말만 앞세워 천국행 구원 열차에 무임승차하려는 것과 똑같습니다. 
천국의 정문을 통과하지 않고 
불법 담치기해서 들어가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구원받는다'는 이론만 애써 취할 뿐, 
그 외 성령으로 거듭난 믿음의 실상적 거룩한 삶에 대해서는 
모두 교만이며 율법적 행위라며 무시해버린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실제... 거듭나 의롭게 된 적이 없었으므로 
그런 거룩한 속성들이 자신에게 나타나지 않으니 
그에 대한 경험이 전무하여 거듭남에 대하여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현대 교회들은 라오디케아 교회의 2탄이 되었고 
구원파와 거의 같은 현대판 영지주의가 재현되었습니다. 

성경에는 교리 주의자들이 가장 싫어하는... 
순종하라, 행하라, 열매라는 말씀이 참 많이 나오는데 
순종이라는 말씀이 구약 신약 합쳐서 120회 이상 기록되었으며 
4대 공관복음서 포함 서신서에만 50회 이상 등장합니다. 
행하라는 말씀 역시 신구약 합쳐 130여 회가 등장합니다. 
열매라는 말씀 또한 신구약 포함 190여 회가 나옵니다. 
하물며... 
듣기만(읽기만) 좋아하고 순종(행함)과 열매가 없으면 
그 이론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성서적으로 '말씀을 듣는다'란 어원의 뿌리는... 
히브리어로 '샤마'인데 '
들었으면 반드시 행하라'는 뜻까지 포함된 어원입니다. 
듣기만 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들었으면 삶으로 나오는 것 이것이 '샤마'의 본질입니다. 

성경을 읽기만 좋아하고 읽은 대로 삶이 없는 것은 
자신을 속이는 거짓 믿음입니다.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순종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야고보서 1장 22절) 

위의 말씀은 '샤마'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라는 뜻입니다. 
위 말씀대로 하지 않는 자는 '거듭남이 없는 거짓 믿음이다'라는 
야고보 기자의 경고입니다.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야고보서 2장 22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야고보서 2장 26절

사실... 사람이 성령으로 거듭나면 당연히 순종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 안에... 진리이신 그리스도의 영인 성령께서 계시는데 
믿음 따로, 삶 따로의 모순적인 모습이 나오겠습니까? 
진짜 성령으로 거듭나면 내 안의 주님(성령)께서 
거듭난 자의 심령을 굳게 잡고 역사하시기 때문에, 
당연히... 거듭난 자다운 모습이 삶의 열매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다음의 성결 말씀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요한복음 16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장 13절) 

그러므로... 애초에, 거듭난 적이 없이 
이론에만 갇힌 지식적 허상의 믿음이기 때문에 
거룩하고 순종적 삶이 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교리와 말만 붙들고 있으면 다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이는 마치... 
호랑이를 잡을 맘도, 잡아본 적도 없으면서 
나무 위에 올라가 호랑이를 이렇게 저렇게 잡았다고 
소리만 고래고래 지르는 격입니다. 
자신이 가짜 사냥꾼이라고 스스로 입증하는 것입니다. 
진짜 사냥꾼은... 
나무 아래에서 묵묵히 호랑이를 잡는데 주력할 뿐입니다. 

말씀을 정리하겠습니다. 
교회에서는 교인들에게...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전하는 것까지는 좋았는데, 
과연 의로운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은 것이 대형 사고였습니다. 
하여, 의로운 것(거듭남)이 뭔지 확실히 모르는 교인들은 
구원 교리만 사생결단으로 꽉 붙잡고 있을 뿐... 
현실의 삶에서는 서로 사랑이 식어지고, 서로 싸우고, 이기적이고, 
목사들과 교인들 간의 법적 소송이 끊이지 않고, 
다는 아니겠지만, 
목사들의 성적 타락과 개인적 탐욕이 매스컴을 통해 계속 오르내리며,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이 육적 분노와 혈기를 쏟아내고, 
서로 미워하고, 서로 헐뜯고, 무시하고, 교만하고, 
뒤에서 쑤군거리며, 서운한 마음이 들면 울분을 토하고, 
익명이 보장되는 인터넷 공간이라는 점을 악용하여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이 절제됨 없이 마구 쏟아내며, 
서로 무시하고, 비방하며, 정죄 판단을 서슴없이 합니다. 
나와 생각과 이념이 다르면 
거룩한 분노로 포장하여 상대를 향하여 서슴없이 악을 쏟아내며 가는 것... 
이것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고 구원받았다'고 
스스로 굳게 믿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열매입니다. 
그저, 더하고 덜하고의 차이만 있을 뿐입니다. 

믿노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모든 것에 대하여 주님께서 지켜보심을 전혀 의식하지 않습니다.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안에 주님이 안 계시므로 심령을 다스려주실 존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구원을 굳게 확신한다고 합니다. 
진정으로 믿음이 가득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지켜보심이 두려워서 함부로 이러지 못합니다. 
육신의 부모님 앞에서도 부모의 시선이 두려워 함부로 못 하면서, 
믿노라 하는 사람들이 살아계신 하나님 면전에서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입니까... 
사람은 의식해도, 주님은 의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을 대단히 무시하는 태도입니다. 
근본적으로 그 믿음이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 눈이 그들의 행위를 살펴보므로 
그들이 내 얼굴 앞에서 숨기지 못하며 
그들의 죄악이 내 목전에서 숨겨지지 못함이라 (예레미야 16장 17절) 

과연, 우리가 하나님의 입장이라면... 
진정 이런 교인들을 구원시키고 싶은 마음이 들겠습니까? 
교리만 알면 구원받을 것처럼 목숨같이 붙들지 말고, 
성경 속에 등장하는 믿음의 선진들이 과연, 현실 속에서 어떤 삶을 살았나 
면밀히 살펴보십시오. 

그들은 거듭난 자의 샘플이고, 최고의 모델입니다. 
그들도 늘 부족한 자였으나 늘 회개하길 힘썼고,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의 길로 갔었고, 
그들의 삶은 늘 거룩하려 했고, 
주님 외에는 세상의 죄 된 것을 바라보지 않으려 했으며, 
육의 악한 속성은 죽고 주님으로 인해 
거룩한 속성의 삶이 그들의 일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함께 하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주님께서 함께하지 않으면 이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이들은... 말뿐이 아닌, 진짜 거듭나 의롭게 된 성도들의 표본입니다. 
또한 구원받은 자들의 기준입니다. 
그들의 모습과 우리의 모습을 비교해보십시오. 
"에이~ 그들은 우리와 다르지, 어떻게 우리와 비교하나~?" 
"그들 같은 사람들이 요즘 세상에 어디에 있어...쯧쯧" 천만의 말씀입니다!!! 

이 시대가 너무 타락하여 마치 정상이 비정상으로 보이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리 느껴지는 것입니다. 
이들처럼 되지 아니하면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저는 언제부터인가 성경을 묵상하며... 
성경에 기록된 믿음의 인물들에 대하여 살펴보는 게 이제는 버릇이 되었습니다. 
과연 나는 이들과 같은가, 다른가, 다르면 무엇이 다른가... 
그리고 저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분명히 직시해야 합니다. 
기록된 믿음의 선진들과 나는 전혀 별개라는 생각은 아예 접으십시오. 
별개라고 여긴다면 당신은 절대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믿음의 샘플이고 우리는 그들처럼 되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왜 그 많은 믿음의 선진들을 성경을 통해 등장시켰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보고 닮으라는 것입니다. 
내 능력으로 닮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애통하고 절박한 마음으로 주님을 간절히 찾고, 
두드리고, 구하라고 하신 이유입니다. 
그래야 성령님이 오셔서 나를 쫓아내고 
그 자리에 올라 나를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절대 이론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살아 역사하는 실상의 영적 흐름입니다. 
삶은 바뀌지 않으면서 어떤 이론, 지식, 교리의 영향으로 
지성과 이성의 관념적 사고체계만 바뀌는 게 믿음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본질이신 주님의 역사로 인하여... 
나의 영과 혼과 육과 삶... 
전체가 뿌리까지 통째로 흔들려 나의 옛것(육의 자아)이 
실상으로 진짜 뽑혀나가고 새것 
즉, 주님과 그분의 거룩함이 내게 심어지는 것... 
이것이 믿음의 실상이자 본질입니다. 
이런 역사 안에 들어온 성도들만이 
성경에서 증거하는 진짜 그리스도인이고 실제 구원받은 자녀입니다. 


출처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