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음 세대까지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사고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지난 2세기 동안 일어났던 많은 위대한 기독교 운동들이 

실패했던 원인들 중의 하나는 그러한 운동들에 가담했던 사람들이 

주님의 임박한 재림에 너무 초점을 맞춘 채, 

주님의 나라가 임하는 그 날까지 어떻게 살아갈까 하는 것에 대한

실제적인 계획을 세우지 않았거나, 미래를 준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러한 운동들과 미래 세대들에게 큰 희생이 따르게 되었다.

 

내 관심을 사로잡고 있는 것들중의 하나는 

주님이 빨리 임할 것이라는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받았다고 

나에게 말해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후에 일찍 죽었다는 것이다. 

나와 나의 친구가 어느 식당의 식탁에 앉아 있을 때에, 

한 젊은이가 들어와서는 주님께서 '조만간'에 임하실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는 밖으로 나가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바로 그 식당 앞에 있는 신호등에서 사고를 당해 죽게 되었다. 

내가 왜 주님의 임박한 재림을 강조하지 않고 있는 지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이제 그 정답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휴거 전에는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고 말해놓고 

이미 죽어버린 사람들을 당신도 알고 있을 것이다. 

누군가 죽어서 주님과 함께 하는 것과 휴거되는 것, 

이 둘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결과는 같지 않은가! 

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함께 할 때에, 우리는 그 분으로부터 

"잘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마 25:21)라는 음성을 듣고자 하는 소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우리는 이러한 음성을 듣기위하여 우리가 이 땅에서 성취해야 하는 것을 성취해야만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나,나,나"만을 고집하는 나 중심적인 사고 구조 그 이상의 어떤 것이 필요하다. 

또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그 이상을 넘어서 다른 세대까지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주님의 재림에 대해 잘 가르쳐준 책이나 교사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러한 가르침들을 통하여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돌아온 것도 알고 있다. 

이러한 가르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격려해주고. 

열정을 불어 넣어주고 있으며, 우리의 삶에 커다란 소망을 심어주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가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이것은 단지 주님의 재림이 지연될 경우를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의 이름으로 행하고 세우는 것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지속되고 유효할 것이기 때문이다.

 

(릭 조이너의 "일천 년 계획"이라는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