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리우드 수준은 필요없다. 건강하고 진심어린 예배와 친교만 있으면 된다-
1. 처음 온 사람에게 인사를 건네주면 좋다. 하지만 부담감을 느끼지 않게.
교회 문 앞이나 주차장에서 '안녕하세요' 정도의
가벼운 인사와 간단한 안내를 해 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다.
자리에 앉기 전에 가볍게 악수를 청하는 정도도 나는 괜찮다.
하지만 그 밖에는 내가 알아서 할 수 있게 해주면 좋겠다.
너무 바짝 다가오지 않으면 좋겠다. 알아서 참여할 수 있게 놔두면 좋겠다.
부담감 느끼게 강요하지 않으면 좋겠다.
2. 내가 방문한 교회만의 고유한 특징을 느끼고 싶다.
모든 교회들이 다 똑같아서는 안 된다.
신학 같은 것에서는 공통점이 있어야겠지만,
내가 방문한 이 교회에는 저 교회와는 다른 무엇이 있어야한다.
전에 내가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찬송가도 거기에 포함된다.
대체로 사람들은 공동찬송가가 없어지는 것에 애석해 하지만,
나로서는 그렇게 되는 것도 그리 나쁘지만은 않다.
음악이란 우리의 고유한 문화와 전승을 표현하는 방식들 가운데 하나다.
당신이 속한 교파의 유구한 역사를 계승하는 노래든,
새로은 세대의 감각에 맞추어 최근에 창작된 노래든,
나는 내가 방문한 교회에서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그런 찬송을 듣고 싶다.
3. 기대치 않은 어떤 것을 느끼고 싶다.
나는 예배가 잘 준비된 교회가 좋다.
하지만 지나치게 프로그램화된 교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성령님께서 운신하실 폭을 남겨두어야한다.
그 정도는 교회마다 다를 것이다.
그러나 성령님께 열어드리는 멈춤의 빈 시간이 있을 때,
나는 예배 순서보다 하나님께서 더 크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4. 특별순서가 있다면, 설명 좀 해주면 좋겠다 .
그 교회가 오순절교회라면, 오늘 왜 방언기도를 하는지 설명을 듣고 싶다.
내가 왜 무릎을 꿇었다가 섰다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면 좋겠다.
세례 교인이 아닌데도 성찬예식 참여가 허락된다면,
왜 그런지. 안 된다면 또 왜 안되는지.
이런 것들에 대해 제발 제발 제발 설명해 주시길 바란다.
5. 나는 회중 가운데 가장 나이 든 사람들 중 하나이고 싶다.
나는 오십대 중반이다. 어떤 교회에서 내가 젊다고 느낄 때면,
나는 그 교회의 미래에 대해 걱정하게 된다.
반대로, 회중 가운데 내가 가장 나이 많은 축에 속하게 되면,
나는 한껏 고무되고 신난다. 젊음은 생명이다. 그리고 미래다.
물론 온통 젊은 사람들 틈에 있다는 것은 소란스럽고 혼란스러운 일이다.
처음 입은 옷처럼 어색하다.
목사님의 설교 예화에 나만 웃지 않는다. 당황스럽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내가 그 교회에서 젊음과 생기를 느낄 수만 있다면,
마땅히 치러야할 작은 대가에 지나지 않는다.
6. 나와 전혀 닮지 않은 사람들과 예배 드리고 싶다.
민족, 사회경제적 수준, 정치적 성향, 그 밖에 많은 것들이 다른...
나는 양복을 말쑥하게 차려입은 신사와
반바지에 고무샌들을 걸친 젊은이가 함께 예배드리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낡고 헤진 성경책과 바이블 앱이 나란히 있는 것이 보기 좋다.
완숙한 성도가 아직은 미숙한 초신자에게
진심어린 애정과 우정의 인사를 건네는 그런 교회가 좋다.
어깨에 문신을 새긴 저 십대가
미숙한 초신자인지 완숙한 성도인지 구별이 안 가는 그런 교회가 좋다.
7. 언제나 예수님께 강조점이 있기를 원한다.
자기 계발에 관한 이야기라면 다른 데서도 많이 들을 수 있다.
내가 예배 드리는 교회에서는 예수님에 관해서만 듣고 싶다.
8. 내가 방문한 교회가 다른 사람들을 얼마나 돕고 있는지 듣고싶다.
내가 예배 드리런 간 교회에서, 그 교회의 새로운 성전건축이나
정치적 입장, 교단 문제 따위를 이야기할 때 나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그 교회가 굶주린 사람들을 먹이고, 집 없는 사람들을 위해 집을 짓고,
선교사들을 후원하고, 복음을 전하는 이야기를 한다면 나는 귀를 기울인다.
9. 뭔가 더 큰 도전을 받고서 그 교회를 나서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왜 그 예배에 참석하겠는가?
- 칼 베이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