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해도 쓰임받을 수 있다 전병욱/규장 

1부│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한다 
하나님의 인재 등용법은 사람들과는 다르다.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여 지혜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아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01_  못생겨도 가면은 쓰지 않는다/다혈질의 성격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주님 앞에서 가면을 벗어라. 
   베드로는 자시 자신의 약점을 가지고 
   주님 앞에 숨김없는 모습으로 나아갔다. 
   우리가 회복되는 비결은 베드로와 마찬가지로 연약하지만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 주께 다가가는 것이다. 
   가식없는 모습으로 자신을 내어놓는 겸손함이 있을 때 
   주님의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일어난다. 
   변화되기 원하는가? 
   주님 앞에서 위선(僞善)의 가면을 벗어라. 

(2) 격려할때 치유된다.     
   예수께서 다혈질의 베드로를 치유하시는 방법은 격려였다. 
   예수님은 베드 로가 풀이 죽어 있으면 격려하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셨다. 
   부활하신 후 베드로를 만나셨을 때에도 
   베드로를 배반자라 책망하지 않고 격려해 주셨다. 
   오늘 우리도 주님을 만나는 예배를 통해서 
   주님의 말씀으로 격려 받는 일이 필요하다, 
   말씀으로 격려받을 때에 변화되고 치유된다. 

(3) 성령충만할 때 변화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성령충만함으로 치유해주셨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점을 제해주시고 장점은 극대화시켜주신다. 
   성령충만은 빈 병에 물을 채우는 것과 같다. 
   즉, 충만은 지배 개념 이다. 
   성령충만은 성령께서 나를 지배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면 
   베드로와 같은 다혈질만큼 주님이 쓰시기에 좋은 기질도 없다.     
   주께서 붙드시면 무조건 순종하고 나간다. 
   순종의 속도가 빠르고 힘 있는 사람으로 변화된다. 


02_ 머리가 아니라 가슴으로 일한다/두뇌 회전이 느려도 이렇게 쓰임 받았다. 
(1) 믿지 않는 가족을 우선적으로 전도하라. 
   안드레는 자신의 형제인 베드로에게 먼저 전도했다. 
   베드로가 누구인가? 
   성격 거칠고 기고만장한 사람이 아닌가? 
   그런 베드로에게 복음을 전해서 
   교회의 초석을 놓는 자가 되게 한 것 이 안드레다. 
   전도 중에 제일 힘든 것이 부모나 형제에게 전하는 가족 전도이다. 
   내 사정을 속속들이 알기 때문에 전도가 어렵다. 
   그런데 그 어려운 가족 전도에 첫 번째로 성공한 제자가 안드레였다. 

(2) 인간의 계산보다는 주님을 의지하라.     
   안드레는 무리들이 굶주리는 문제에 대하여 
   자신이 해결하려 하기보다 
   오병이어를 가진 어린아이를 예수께로 데리고 갔다. 
   인생의 문제는 머리만 써서는 풀리지 않는다. 주님을 의지해야 풀린다. 
   내 힘과 내 능(能)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되는 것이다. 
   예수께 의지함으로써 문 제의 해결을 받는 안드레와 같은 사람이 되라. 

(3) 복음 안에서 인간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라.     
   안드레는 당시에 복음의 문 밖에 있던 헬라인을 
   예수께 연결시켜서 최초로 이방인 선교의 문호를 열었다.     
   그는 그때 당시 유대인의 고정관념을 뛰어 넘어 
   이방인인 헬라인을 예수께 소개해 드렸다. 
   안드레는 복음 안에서 고정관념에 도전한 사람이었다. 
   교회에는 안드레 같은 사람이 많아야 한다.     
   학연, 지연, 혈연의 한계를 뛰어넘어 복음의 보편성을 구현하는 자가 되라. 


03_ 낮은 곳이 안전하다/분노의 사람도 이렇게 쓰임 받았다. 
  (1) 분노로 일하지 말고 사랑으로 일하라.     
    야고보는 분노로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예수님의 일행을 배척한 사마리아 동네를 멸해버리기 원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런 그를 책망하셨다. 
    이 세상에는 여러 가지 힘이 있는데, 분노도 그 중 하나이다.     
    그래서 분노가 생기면 평상시와 다른 새로운 힘으로 임하게 된다. 
    그러나 성도는 분노를 가지고 일해서는 안된다. 
    성도의 행동근거는 사랑이어야지 분노가 되어서는 안된다. 

 (2) 예수님의 방법은 사람이다.     
   예수님 당시의 기성 종교 조직들은 구조의 변화를 외쳤다. 
   그러나 예수님의 방법은 사람이었다.     
   진정한 개혁은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복음의 논리는 ‘사람’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먼저 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진리를 붙든다. 
   만물보다 거짓 되고 부패한 것이 사람의 마음이므로 
   먼저 사람이 바뀌어야 만물이 바뀐다. 
   환경과 구조도 부패한 사람 때문에 탄식하고 있다 (롬8:22). 

(3) 남의 변화를 외치지 말고 나의 변화에 힘써라.     
   제일 변화시키기 쉬운 대상은 바로 나 자신이다. 
   다른 성도들을 성경 읽게 만드는 일은 어렵다. 
   그러나 내가 성경 읽는 것은 쉽다. 
   다른 성도들을 헌신하게 만드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내가 헌신하는 것은 쉽다.     
   세상에서 가장 쉬운 일은 내가 변화되는 일이다. 내가 먼저 하면 된다. 
   ‘나’의 변화를 통해 ‘나’의 변화를 추구하는 자가 되라. 



04_ 조연 인생이 롱런한다/속 좁은 사람도 이렇게 쓰임 받았다. 

(1) 원칙으로 사람을 배척하는 자가 아니라 포용하는 자가 되라.     
   예수님은 할 수 있으면 원칙을 가지고 사람을 품으라 하셨는데, 
   요한은 원칙을 가지고 사람을 내치려고 하였다. 
   지금도 원칙주의자라는 사람들 가운데 자기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배제하는 칼로서 그 원칙을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우리가 원칙을 확대해석해서 
   폭넓게 많은 사람을 품기 원하신다. 
   이렇게 품을 줄 아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다. 

(2) 주연이 되기보다 조연되기를 기뻐하라.     
   요한은 철저한 2인자 의식으로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다. 
   오순절 성령강림 후 베드로가 초대교회의 지도적 역할을 수행할 때에 
   그것을 기뻐하며 돕는 자가 된 것이다. 
   그는 2 인자의 자리에 만족하는 모습으로 변화되었다. 
   이 땅에서 제일 멋진 인생이 누구인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돕는 인생이다. 
   주연은 반짝하다가 사라지기 쉽다. 그러나 조연은 롱런한다. 

(3) 능력은 사랑에서 나온다.     
   요한은 우레의 아들에서 사랑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진정한 능력은 사랑이다. 
   우리의 심령 속에 사랑이 들어가면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목사에게 사랑이 들어가면, 
   성도를 변화 시키는 깊이 있는 설교를 하게 된다.     
   과학자에게 사랑이 들어가면, 
   어려운 사람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을 불어넣는 발명품을 만들어 내게 된다.     
   요리사가 사랑을 가지면, 사람들의 입맛을 만족시키고 
   건강을 지켜주는 좋 은 음식을 만들어 낸다. 



2부│ 변방 인생도 중심 인생으로 쓰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메인스트림이 아니라 변방 인생을 들어 
하나님나라 건설의 중심 일꾼으로 사용하셨다. 
변방 인생을 통하여 세상을 변화시키셨다. 

05_ 매끄러운 거짓말보다 정리되지 않은 진실이 강하다
    /우유부단한 사람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예수님을 만나게 하면 변화된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전도할 때에 구구한 말을 하지 않고 
   예수께 “와 보라” 라고 말하였다. 
   예수님을 만나면 변화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몰려드는 이유가 무엇인가? 
   예수님 을 만나러 오는 것이다. 
   교인들이 예수님을 만나도록 해주는 것, 
   그것으로 교회는 사명을 완수한 것이 된다. 
   목사의 사명 역시 마찬가지다. 예수님만 외치면 되는 것이다. 

(2) 포장보다는 진실이 더 강하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빌립은 정리된 사람이 아니었다. 
   거침없는 이론도 없었다. 
   “와 보라’ 라는 투박한 말로밖에 전도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 정리되지 않은 한 마디의 진실이 
   한 영혼을 살리고 한 시대를 살렸다. 
   교언영색(巧言令色)으로 포장하는 시대에 하나님의 사랑은 투박하지만 
   진실한 말로 이 시대의 빈 가슴들에게 다가가야 한다. 

(3) 우리의 생각 속에 예수님이 들어가면 달라진다.     
   우리의 계산에 주님이 계시면, 
   어떤 대적의 공격 앞에서도 우리는 무너지지 않는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내 사고(思考)속에 예수님이 들어오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 계산에 들어오시면 변화될 수 있다. 외부 환경은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현실 자체가 아니라 내 내면에 있다. 
   내 내면 이 주님과 교통하고 주님과 연결되어 있으면 변화될 수 있다. 

06_ 정직하면 하늘도 열린다/편견의 사람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우리의 문제는 고난의 문제가 아니라 진실의 문제이다.     
    나다나엘이 진실한 모습으로 예수께 나아갈 때 그의 편견이 치유되었다.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께 나아갈 때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났다. 
    정직이 힘이다. 우리는 모두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다. 부족하고 연약하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서기 위해 해야 할 일은 
    있는 모습 그대 로 주님 앞에 서는 것이다.     
    정직해야 치유가 일어난다. 진실한 자가 강하다. 

 (2) 진실한 사람에게 하늘이 열린다.     
   진실한 사람은 겉으로 볼 때 세상의 권모술수를 행하는 사람에게 
   백전백패 할 것처럼 보인다. 
   세상 사람들은 잔머리를 굴리고 모략을 써서 
   진실한 사람을 넘어뜨리려 한다. 일대일로 대결하면 도저히 이길 수 없다. 
   그런데 진실한 사람에게만 임하는 축복이 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이 임하는 
   권능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이다. 

(3) 진실한 사람에게 진실한 친구가 생긴다.     
   진실해야 진정한 신앙의 동지를 만날 수 있다. 
   나다나엘 곁에는 항상 빌립 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진실함의 축복은 친구가 생긴다는 것이다. 
   친구 없는 외로운 사람들이 있다. 진실하지 않아서 그럴 경우가 많다. 
   진실함 없이도 동업자는 만들 수 있지만 
   절대로 친구는 만들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라.     
   진실한 사람에게 진실한 친구가 생긴다. 
   험난한 인생길에 진실한 친구를 얻는 만큼 큰 축복도 없다. 


07_ 변화된 말이 변화된 인생을 만든다/불평자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말이 변화되어야 사람이 변화된다.     
   도마는 부정적인 언사(言辭),빈정대는 투로 말했다(요 11:16). 
   입술에서 나오는 말이 긍정적인 말, 신앙의 말로 
   변화되어야 체질을 개선할 수 있다. 
   주로 점액질의 사람들이 비판을 즐겨한다. 의심이 많고 불안하기 때문이다. 
   말로 그 의심과 불안을 해소하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사 람은 말로 비판하기 보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사람을 향해 말로 풀기보다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 이 더 긴요하다. 

 (2) 일상의 한계에서 벗어나 카리스마의 세계를 체험하라.     
   하나님의 깊이 있는 능력의 약속을 붙들기 위해서는 
   카리스마의 세계를 경험해야 한다. 일상이 전부가 아니다. 
   하나님의 세계가 있다. 
   천국의 세계가 있다. 
   영적인 세계가 있다. 
   그 세계를 알고 체험해야 한다.     
   우리 삶에서 카리스마적인 면을 살리기 위해 필요한 것이 예배이다. 
   예배 를 통해서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의 어루만져주심을 체험할 때 
   진정한 변화를 체험하게 된다. 

 (3) 하나님의 보물은 낮은 곳에 있다.     
   하나님은 보화를 높은 곳에 두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보화를 땅에 묻어두 신다. 
   그래서 땅을 파는 사람, 삽질하는 사람이 횡재하게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법이다. 
   진실한 사람을 만나고 싶은가? 
   낮아지고 섬기는 곳에 진실한 사람이 있다. 높은 곳에는 없다. 
   낮아지는 그곳에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가 있다.     
   낮은 곳은 하나님의 권능을 맛보는 자리다. 
   나의 승리가 아니라 남의 승리 를 위해 섬기는 인생을 살라. 


08_ 하나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
   차별받던 주변부 인생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낮은 자를 품을 때 우리의 삶이 넓어진다.     
   예수께서는 유대에서 손가락질 당하는 세리 마태를 제자로 세우셨다. 
   예수께서는 바닥인생도 구원받아 하나님의 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마태의 사례를 통해 실증하셨다. 
   어떻게 해야 우리의 스케일이 커지는가?  낮은 자를 품을 때 커진다. 
   언제 우리의 사역이 넓어지는가? 
   사회의 고정 관념으로 차별받고 소외된 자들을
   복음으로 포용할 때 사역이 넓어진다. 

(2) 잔치의 영성(靈性)으로 복음을 전하라.     
   마태는 예수님을 영접한 표시로 자신의 집에서 잔치를 열었다. 
   마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한 나머지 잔치를 열었다. 
   또한 그 잔치에 온 이웃들에게 전도하였다. 
   그렇게 전도하자 전도는 수고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기독교란 무엇인가?  잔치하면서 전하는 것이다. 
   축제와 잔치의 기쁨으로 복음을 전하라. 

(3) 사명은 잠재력에 불을 붙인다.     
   마태에게는 세리의 특성이 있었다. 
   그는 분석 능력이 탁월했고 체계적인 사고력(思考力)을 가지고 있었다.     
   마태는 이런 자신의 잠재능력과 주님이 주신 사명을 결합하여 
   복음서 기자로서, 주님의 사도로서 크게 쓰임 받는 거룩한 종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에 쓰레기통은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셔서 영광받기 원하신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날 때 우리의 잠재력 또한 놀랍게 쓰임 받을 수 있다.     
   사명은 잠재력에 불을 붙인다. 


3부│ 연약한 나도 쓰임 받을 수 있다 
하나님은 슈퍼맨을 들어 쓰지 않으셨다. 
이름 없고 빛도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 나님의 손에 붙잡힐 때 
사람이 감당치 못하는 사람이 되었다. 연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09_ 약할때 사랑이 깊어진다/작은 자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작지만 성실한 사람이 되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성취하는 사람이 아니라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작은 사람’이냐,‘큰 사람’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성숙한 사람 인가. 
  미숙한 사람인가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문제는 무엇이 ‘성숙’이냐는 것이다. 
  성숙에는 희생과 섬김과 겸손이 들어있다.     
  이런 덕성이 없으면 절대로 ‘성숙하다’고 할 수 없다. 

(2) 작지만 중요한 일을 감당하는 사람이 되라.     
  큰 것만이 강한가?  그렇지 않다. 
  정작 중요한 것은 작은 것, 정밀한 것이 다. 
  큰 것은 별다른 기술없이 전부 카피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힘든 것은 작은 것을 카피하는 일이다. 
  나노 (nano) 의 세계에서는 쉽게 카피가 안 된다. 
  진짜 실력은 작은 것을 잘 만드는데 있다. 
  영적 세계도 마찬가지다. 작은 일에 충성하는 자가 영적 강자(强者)이다. 

(3) 작지만 쓰임받는 인생이 되라.     
  크고 작은 게 무슨 상관인가?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최고 아닌가? 
  길지 않은 일평생, 하나님 앞에 쓰임 받으면 
  그것보다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약하고 작은 자를 쓰신다. 
  세상의 미련한 자를 택하여 지혜있는 자를 부끄럽게 하신다. 
  약해도 쓰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약할 때, 부족할 때 사랑은 더욱 깊어진다. 
  작지만 쓰임받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 되라. 

10_ 주목받지 못해도 충성한다/이름 없는 자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충성을 다하는 것이 영광이다.     
  예수께서 유다 다대오에게 주신 말씀의 요지는 
  인기주의에 연연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눈보다 인간의 눈을 얼마나 많이 의식하고 있는가?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의 눈앞에서 행동하라. 
  하나님께 인정받으면 된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정한 충성이다. 
  주목받지 못하는 곳에서 충성을 다하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 

(2)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는 것이 영광이다.     
  인기주의에 편승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영광이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말씀 중심의 신앙이 왜 중요한지 모른다. 
  말씀 중심의 신앙만이 열매를 거두게 하고, 
  말씀 중심의 신앙만이 우리를 살린다. 
  체험과 환상 속에 머물 지 말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라. 

(3)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 영광이다.     
  내가 먼저 변화되어 순종의 길을 걸으면
  세상이 변화된다는 것이 예수님의 논리이다. 
  세상에 영광을 드러내려면 내가 변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변화될 때 그것이 세상에 영광이 된다.     
  내가 먼저 예배의 감격을 누리고 
  내가 먼저 찬양의 능력을 누려 순종의 걸음을 걸어가면 
  그것이 세상 가운데 영광으로 드러나게 된다. 


11_ 변화되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세상 이데올로기를 따르던 자도 이렇게 쓰임받았다. 

(1) 복음으로 변화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기독교는 변화의 종교이다. 
  시몬과 같은 무장혁명주의자도 변화될 수 있 다. 누구나 변화될 수 있다.     
  변화의 복음, 회개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하여 
  이 땅을 변화 시켜야만 소망이 있다. 
  세상에서 제일 변화시키기 쉬운 존재가 누구인가? 바로 나 자신이다. 
  나 자신이 변 화되는 것, 그것이 회개이다.     
  내가 회개하는 것이 곧 변화이며 그 변화가 곧 성장이다. 

(2) 성령 안에서는 반대자까지 품는 능력이 생긴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가장 대비되는 인물은 
  마태(세리이자 매국노)와 시몬(극렬 애국당)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복음 안에서 하나가 되었다. 
  이렇게 하나 되게 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이자  
  사랑의 능력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모습이다. 
  우리의 교회 안 에서 학연, 지연, 혈연의 연고주의를 뛰어넘는 
  복음의 능력이 발휘되어야 한다. 
  이럴 때 교회가 세상 앞에 빛과 소금이 되지 않겠는가? 

(3) 십자가의 사랑이 가슴이 넓은 사람으로 만든다.     
  시몬은 호전적인 칼을 버리고 십자가의 길을 걸었다. 
  편협한 애국심이 온 세상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변화되었다. 
  왜 그런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품었기 때문이다. 
  십자가의 사랑을 품은 자는 좁아질 수 없다. 
  우리의 심령 가운데 제해야 할 것은 바로 미움이다. 
  미움은 우리를 좁아지게 만든다.     
  미움을 가지고는 영적 지도자가 될 수 없다. 


12_ 지금 회개하면 쓰임받는다/
범죄해서 망한 것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했다. 

(1)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지금’의 신학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고 순종하는 백성들은 
 다 ‘지금’ 충성하게 되어 있다.     
 반면 악한 마귀가 역사하는 사람들을 보면 ‘지금’충성하지 않는다. 
 예정론 이란 미래에 모든 상황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늘’ 충성하는 신학이다. 
 그렇다면 가룟 유다는 왜 구원받지 못했는가?     
  ‘오늘’ 하나님 앞에 충성하지 못했고, ‘오늘’ 배신했고, 
  ‘오늘’ 회개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2) 탐욕은 사탄의 옥토이다.     
 가룟 유다는 돈을 사랑하는 탐욕 때문에 망했다. 
 사탄이 역사하기에 좋은 옥토는 탐욕의 마음이다.     
 그런 땅이야말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 마귀의 열매를 맺는 기름진 땅이다. 
  말세에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말세에 재물을 쌓지 말라. 
  나누어 주고 섬기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설 때 나를 위해 쌓은 재물이 많으면 심판을 받는다. 

(3) 회개할 기회 주실 때에 회개하라.     
 가룟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망했다. 
 그는 죄 지어서 망한 게 아니라 회개하지 않아서 망했다.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여러 차례 주신 회개의 기회를 그때마다 거부하여 망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에게 수 차례 회개의 기회를 주신다. 
 회개의 기회가 단 한 번 밖에 없다고 생각 하지 말라.  절대 그렇지 않다.     
 정말 많은 기회를 주신다. 
 그렇지만 다 거절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한다. 
 회개하지 않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하는 것이다. 
 보라. 지금은 회개의 때, 구원의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