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매력 있게 사는 방법은 '답게'사는 것입니다.
여자면 여자 답게, 남자면 남자 답게,
학생이면 학생 답게, 목회자면 목회자 답게,
그리스도인이면 그리스도인 답게,
그렇게 살아야 매력 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답게'사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도
그렇게 사는 것이 생각 만큼 쉽지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존재가 가진 고유한 특질을 잘 알아야
'답게'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자와 구분되는 남자의 특질을 잘 알고,
그 특질에 맞게 사는 사람을 우리는 남자답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답게 살려면, 사람이 짐승과 구분되는 특징을 잘 알고
그 특질에 맞게 살아야 합니다.
사람은 합리적 이성과, 본능이 아닌
양심을 가졌다는 점이 짐승과 다른 특질이죠.
그래서 합리적 이성을 가지고,
본능을 뛰어 넘는 도덕적 양심으로 살아야
'사람 답다'라는 말을 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사람답지 않은 것입니다.
사람이 자신이 가진 신분이 가진 고유의 특질을 잘 알고
그에 맞게 살아야 매력 있는 인생, 멋진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가수가 노래를 했습니다. '너는 누구냐~? 나는 누구냐~?'
저도 이 가사를 빌어 여러분께 질문합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 질문에 존재론적인 대답을 할 수도 있고,
관계론적인 대답도 나올 수 있겠죠.
존재론적으로는 사람, 남자, 여자라는 대답이 나오고,
관계론적으로는 아버지, 목사, 그리스도인이라는 대답이 나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인입니다.
당신은 그리스도인입니까? 라고 물으면
'네'하고 쉽게 대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종종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이 있는데,
'당신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간단하지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질문입니다.
이 질문에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이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의인이라 대답하면,
의인답게 살려는 삶의 태도를 가질 것이며,
죄인이라 대답하면,
죄인답게 살려는 태도를 가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의인입니까? 죄인입니까?
자신 있게 대답하십시오. 우리는 '의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알기 전에는 수많은 죄악을 만들며 사는 죄인이었으나,
예수를 믿고 난 후에는 의인이 된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는 우리가 죄로 인해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는 것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외아들인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 보다
우리를 더욱 더 사랑하신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우리는 죄사함을 입어 의인의 회중에 포함된 것입니다.(이사야 53)
하나님은 더이상 우리를 죄인이라 부르지 않으시고,
의인이라 부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외아들 예수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다신 이유는,
사람을 더이상 죄인으로 보지 않으시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죄인의 의인되는 길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길입니다.
나를 속죄하시려고 돌아가신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의인이 되는 것입니다. (롬 8:30,33)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를 믿는 우리를 의롭다하시니,
우리는 누가 뭐라해도 의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세상 사람과 똑같이
죄를 짓고, 의로운 행동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점은,
그들은 죄인으로서 죄를 짓고,
우리는 의인으로서 죄를 짓는다는 점입니다.
죄를 지어도 우리는 의인의 신분이라는 점이 다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나를 의인으로 보느냐,
죄인으로 보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때때로 의로운 행동을 한다고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인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인된 내가 죄를 지으면,
의인으로서 짓는 죄이기 때문에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그 부끄러운 마음이 우리의 삶에서 죄를 하나씩 하나씩 지워갑니다.
이제 남은 문제는 '의인 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 답게 살아서 아름답고 자랑스런 삶을 살것인가?
아니면, 의인 답지 못하게 살면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고 살 것인가의 문제가 우리에게 닥쳐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사는 것이 의롭게 사는 것입니까?
우리는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의롭다'칭하신 요셉의 삶을 보면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19절에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요셉은 정혼한 마리아가 잉태된 것을 알고,
그 일을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끊으려 했습니다.
그러던 중, 꿈에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왔고,
그가 아이를 낳을 때 까지 동침하지 않았습니다.
의인답게 사는 것은,
첫째, 다른 사람의 허물을 들추고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요셉이 마리아가 잉태한 것을 알았을 때,
충격과 수치심에 몸을 떨었을 것입니다.
그가 처한 상황을 보면, 그 사실을 들춰내면,
마리아는 돌아 맞아 죽기 쉽상이며, 요셉은 큰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덮으면, 자기 혼자의 상처로 끝날 것이지만,
들추면 상대방과 나에게 큰 상처가 남을 것임을 잘 알았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면 자기도 허물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저 사람의 허물을 공격하지만,
내일이면 내 실수를 저 사람이 공격하게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의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으로
우리의 죄와 허물을 '덮었기에' 의인이 된 것입니다.
나도 덮은 바된 사람이 어찌 상대의 허물을 들추겠습니까?
자칭 의인이라 하던 바리새인들은
허물을 들추는 데 바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현장에서 간음하다가 끌려온 여인의 죄를 덮으셨습니다.
세번 배반한 베드로의 잘못도 들추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 있니?'하지 않으시고,
단지 '나를 사랑하느냐? 그러면 내 양을 치라'는 말씀만 하셨습니다.
의인은 덮는 사람을 말합니다.
사람은 사랑하게 되면 덮어주게 되어있습니다.
며느리와 딸 중에 누가 더 곱게 보입니까?
딸을 더 사랑하기에 딸의 잘못은 더 덮어주게 됩니다.
두번째, 무슨 일이든지 조용히 해결하는 것입니다.
'그가 가만히 끊고자 하여'라는 말씀은,
'네가 아기를 가졌으니 정혼을 파기하겠다'고 말하고
끊겠다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에 그 문제로 정혼을 파기하면,
아이를 가졌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비난의 화살이 마리아는 물론
마리아의 가족에게 돌아갈 것이며,
아기를 갖게 한 남자를 찾겠다고 한바탕 혼란의 바람이 불 것입니다.
서로의 생명이 위협 받는 상황으로 치달을 것입니다.
사람이 옳고 그름을 따지면 시끄러워집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대상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나'입니다.
만약, 다른 사람을 향해 따지면 그 싸움은 끝이 없게 됩니다.
사람과의 관계는 항상 상대적인 것이어서,
바람을 피운 여인에만 잘못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을 피울 수 밖에 없게 만든 남편도 잘못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가출한 아들만 잘못한 것이 아닙니다.
가출하도록 만든 부모에게도 잘못이 있는 것입니다.
항상 말하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옳고 그름을 따지자면, 49:51입니다.
그 1의 차이를 두고 서로 실갱이를 하는 것입니다.
다 잘못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나에게서 옳고 그름을 따지면 조용해 지지만,
다른 사람에게서 따지면 시끄러워집니다.
의인인 요셉은 상처가 덧나고,
희생자가 생기는 것을 원하지 않고,
어찌하면 조용히 해결할 수 있을까?
어찌하면 다른 이유를 들어 조용히 끝을 낼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
예수님은 조용히 해결하는 구체적인 원칙을
마태복음 18장 15절에 가르쳐 주십니다.
먼저는 상대와 이야기 하고,
두세 사람을 증인 세우고,
그래도 안되면 교회에 나타내라고 하십니다.
의의 기준을 두고 따지면 여기에 남아 있을 사람이 하나도 없습니다.
세번째, 하나님의 방법을 구하는 것입니다.
요셉은 '조용히 해결하려 생각'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생각은 혼자 만의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그의 생각을 물었음을 말합니다.
하나님, 어떻게 할까요? 하고 물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은 자기의 한계를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의인이라 하셨지만
그렇다고 내가 모든 걸 완벽히 잘 해낼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의인은 항상 하나님께 묻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똑똑하다 하여도 일을 파장을 끝까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님 어찌 할까요?'하는 물음이 많아야 합니다.
네번째, 하나님의 분부대로 하는 것입니다.
요셉이 꿈에서 들은 천사의 말을 듣고
마리아를 데려왔다는 것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선명한 꿈이었어도 그것은 꿈이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 누가 꿈에서 나타난 계시대로
무엇을 하는 사람이 있으면 미쳤다는 말을 듣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요셉은 꿈에서 들은 말임에도 불구하고 데려오기로 하였습니다.
그가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묻고 응답을 기다리고 있었던 중이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것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그때의 마리아는 임신한 지
육개월 정도 지난 시기였다고 합니다.
데려온 지 서너달 만에 아기를 낳을 것이 뻔한데,
사람들에게 수치를 당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요셉은 마리아를 데려온 것입니다.
그 부분이 요셉이 가장 괴로워한 부분이기도 했지만,
응답대로 하겠다는 요셉에게는 그것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의인된 사람들입니다.
의인의 신분에 맞게
요셉처럼,
사람의 허물과 실수를 덮고,
옳고 그름의 화살을 나에게로 돌리며,
조용히 해결하려는 데 촛점을 맞추고,
하나님께 상의하며,
하나님의 분부대로 하는 여러분이 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을(의인 답게 사는 사람들에게) 호위하시며(시 5:15),
그의 부르짖음을 들으시며(시 34:15),
땅을 차지하게 하시리라(37:25) 약속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