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나무>
성경에는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두 나무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창세기에 기록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그 열매는 먹어서는 안되는 나무였습니다.
하나님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인간의 심리는 참으로 이상합니다.
하나님이 먹지 말라고 했으면
쳐다보지도 말고 생각하지도 말아야 하는데
'하나님이 왜 먹지 말라고 했을까?'
하고 호기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그것을 먹어서는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고 자꾸 생각하다 보면 평소에 관심이 없다가도
한번 더 쳐다보고 싶은 유혹을 느끼게 됩니다.
죄가 성립되는 과정은 마음이 생각의 통로를 열어주고,
생각을 통해 들어온 죄가 마음에 착상하고,
마음에 오래 머물던 생각이 행동으로 옮겨질 때
죄가 되어 사망을 초래합니다.
하와는 하나님이 먹지 말리는 선악과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호기심도 있고 궁금하기도 한 차에
사탄이 뱀으로 변신하여 나타났습니다.
뱀이 하와에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정말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
사탄이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모를 리 없지만
자기 입맛에 맞는 대답을 유도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약간 비틀어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사탄은 부정적인 대답을 이끌어내기 위해서
긍정의 말을 유도하는 언어기법을 사용했습니다.
하나님은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동산의 모든 나무 열매를 먹되
한 가지 예외 규정을 두신 것이지요.
즉, 다 먹어도 좋으나 선악과만은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하와도 동산 나무의 열매를 먹을 수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만은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대답했습니다.
선악과가 동산 중앙에 있다는 것과 만지지도 말라는 것은
하와가 극적 효과를 더하기 위해 보충한 말입니다.
여기까지 보면 하와가 한 말에는 별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너희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는데
하와는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로 말을 바꾸었습니다.
이 말은 반드시 죽는다는 것이 아니라 죽을 확률이 있다는 말로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변개시킨 것입니다.
"죽을까 하노라"는 말은 '죽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어쩌면 안죽을 수도 있다는 자기 암시 같은 희망을 내비친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뱀은 재빠르게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말했습니다.
선악과를 먹어도 안죽을 수 있다고 여기고 싶은 하와에게
결코 안죽는다는 말은 눈이 번쩍 뜨이는 희소식이었습니다.
거기다가 뱀은 선악과를 먹어도 죽지 않는
논리적인 이유를 하와의 이성에 호소합니다.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셨기 때문이다."
사탄은 하나님이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한 이유를
세 가지로 들어 논증합니다.
첫째, 눈이 밝아진다ㅡ
눈이 밝아지면 무엇이든지 볼 수 있는 천리안이 됩니다.
세계정부 로고에 등장하는 전시안과도 같은 것이지요.
모든 것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신적 통찰력을 갖게 된다는 뜻입니다.
얼마나 기막힌 일입니까?
둘째, 하나님과 같이 된다ㅡ
사탄은 하나님과 같이 되려고 반역하다가 쫓겨났습니다.
이것은 교만의 극치요 피조물의 한계입니다.
하나님처럼 신이 되려는 인간들로 가득한 이 세상은
사탄과 그 사자들과 함께 영원히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선악을 안다ㅡ
눈이 밝아 모든 것을 통찰하는 혜안을 가져
하나님과 같이 되면 선악을 아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하나님같이 되어 선과 악, 옳고 그름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것은
무한한 지혜와 총명을 가진 신적 존재에게만 가능한 일입니다.
선악과를 먹기만 하면 인간이 신이 된다는 것을 아신 하나님이
그래서 그것을 먹지 말라고 했다는 뱀의 말을 듣고 보니 하와는
"그랬었구나!" 하고 탄성을 지르며 은근히 화가 나기도 하고
하나님이 원망스럽기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처럼 되면 어때?
하나님같이 되어 격이 맞으면 친교하기도 좋을텐데'
하고 생각하니 먹지 말라고 한 선악과가 엄청난 효능을 가진
만능의 열매처럼 구미를 당겼을 것입니다.
하와는 뱀과 대화를 하면서 이미 사탄의 최면술에 걸린 상태입니다.
이성이 마비되고 제정신도 아닌 황홀경에 빠져
정상적인 판단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선악과를 바라보니
정말 뱀의 말대로 매력 덩어리 그 자체였습니다.
보면 볼수록 먹음직스럽고 보기에도
아름답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하와는 양심의 가책도,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도 없이
태연하게 손을 내밀어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던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여기서 문제 되는 것은 아담의 태도입니다.
기분과 감정에 좌우되기 쉬운 하와는 그렇다고 쳐도
선악과를 먹지 말라고 경고를 받은 것은 사실 아담이었습니다.
그 때는 하와는 지음을 받지도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받아 그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는 아담은
뱀이 하와에게 말할 때 함께 있었습니다.
하와는 하나님의 명령을 직접 듣지 못하고
아담으로부터 전해 들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구적으로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들은 아담은
뱀이 하와를 유혹할 때 단호히 그건 아니라고 말하며
하와를 데리고 갔어야 하는데 뱀이 하와에게 하는 말을 다 듣고서
하와가 주는 선악과를 스스럼없이 받아 먹었습니다.
결국 부부가 공모하여 하나님을 저버린 것입니다. '
아담이 현장에 함께 있었다는 것은 뱀이
"너희"라는 복수를 쓴 데서도 알 수 있지만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었다는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창 3:6).
아담은 아내의 죄에 동조하였으므로
성경은 아담이 범죄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래서 로마서는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롬 5:15).
이렇게 해서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죽음이 왔습니다.
지금까지 선악과라는 나무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온 인류가 죽게 되었을 때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나무에 달려야 했습니다.
예수님이 매달렸던 십자가가 또 다른 나무였습니다.
첫 번째 나무로 죄가 시작되었고,
두 번째 나무로 죄가 끝나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 나무로 인해 인간이 타락하여 죽게 되었고,
두 번째 나무로 인해 인간에게 사는 길이 열렸습니다.
첫 번째 나무는 산 나무였고,
두 번째 나무는 죽은 나무였습니다.
그런데 살아 있는 나무로 인해 죽음이 왔고,
죽은 나무로 인해 생명이 왔습니다.
첫 번째 나무를 먹고 사람이 죽었으나
두 번째 나무를 먹고 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먹어야 할 생명나무입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 나무를 동산 중앙에 두신 것처럼
그는 두 번째 나무를 역사의 중심, 곧 이 세상 중앙에 두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먹고 생명을 얻도록 하셨습니다.
이 나무는 먹으면 먹을수록 생기가 넘칩니다.
두 번째 나무가 핵심입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삶의 중심이 되게 하시고
다른 모든 것은 그것에다 집중하도록 하십시오.
그리고 그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고 살도록 하십시오.
♡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저주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구해 주셨습니다(갈 3:13).
♡ 네가 동산에 있는 과일을 마음대로 먹을 수 있으나
단 한 가지 선악을 알게 하는 과일만은 먹지 말아라.
그것을 먹으면 네가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 2: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