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쟁의 가장 상습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음모인 반면에 
솔직함과 진실성은 모든 참된 화목의 필수 요건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그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분쟁이 그의 오심의 피할 수 없는 
결과라는 것과 우리가 예수께 합당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예수를 가장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쟁을 일으키지 않아야 함을 말씀하고 있다. 
화평을 구하며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을 좇고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해야 한다. 

화평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왜냐하면 화평은 화목을 뜻하며, 
하나님께서는 화평과 화목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을... 
자기와 화목되기를 기뻐하셨다. (골 1:20) 

분쟁을 일으키는 것은 마귀이며, 지금도 자녀들을 통하여 
화평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화평이 존재하지도 않는데 “화평, 화평”이라고 선포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거짓 선지자의 역사이다. 

값싼 화평은 값싼 용서에 의해 얻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참된 화평과 참된 용서는 값진 보화이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회개할 때에만 용서하신다. 

예수께서도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위법 행위를 인정하지도 않고 회개하지도 않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제자의 희생이 따르지 않는 복음 선포나 
회개가 없는 믿음의 요구는 복음을 값싸게 만든다. 




‘존 스토트, 예수님의 산상설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