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적인 학자와 세상 사람들은 예수님을 "선한 인간"으로 평가한다. 어떤이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님은 사랑이 많으며 항상 가난한 자와 부족한 이들과 함께 하셨고 억압받는 자의 친구며 원수 까지도 사랑하라 하셨기에 자신도 존경하고 좋아하는 성인 정도로 생각한다.
하지만 겸손한 성품만 아니라 성경을 보면 자기 중심적인 말씀이 많다. "나를 따라 오라 내게 오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요한14:6) 창조주와 인간을 화해시킬 존재는 자신 뿐이다 라고 확언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신 고로 인간은 생각하길 무차별적 용서라 생각하지만 공의로운 재판관이란 창조주의 속성에 위배된다. 그러므로 그 답은 예수 그리스도 뿐 이다. 그는 제자들께 틈 날때 마다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을 말씀하셨다. 기독교의 으뜸가는 심벌로 십자가가 자리잡고 그의 살과 피를 기념하는 성례전이 교회의 중심이 되었다. 하나님은 십자가의 예수님께서 인류의 죄값을 치름으로 구원의 길을 열어 놓았다. 성부 하나님은 예수를 죽음에서 일으키심으로 그 모두가 사실임을 확증하셨습니다.
"좋은 소식"을 의미하는 "복음"은 거룩하고 타당하며 은혜 입니다. 창조주는 누구라도 그리스도를 통하여 창조주 하나님과 화해하며 교통하는 방편을 마련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인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은 정말 외길 밖에 없습니까? 라고 묻는다. 인간의 죄악된 속성은 1,000개의 길이 있더라도 1,001번째 길을 고집 할것 입니다. 왜냐면 하나님의 길 보다 자신의 길을 더 믿고 의지하는 원죄적 인간 마음의 속성은 으뜸가는 죄의 본질이기 때문 입니다
이러한 복음은 대중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나님 스스로 인간이 되었다는 개념부터 십자가의 대속과 현대인들이 보기에 십자가서 벌거 벗은채 피투성이로 죽은 자가 하나님이요 심판 주요 구세주란 자체가 --- 복음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면 천국이 영광스런 실채가 되며 반면 등을 돌린 자는 지옥의 두려운 실재가 된다 하니 현대 문화의 치열한 논쟁의 뇌관임을 깨닫는다. 기독교 신앙에서 반문화적인 동성애 와 낙태 찬성하는것 이전에 그보다 더욱 복음의 진리가 세상에서 볼때 반문화적이며 불신자들의 공격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문화의 전역에 걸쳐 수많은 이슈를 둘러 싼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침묵하는것 보다 정확하게 목소리를 내어야 하나 긍휼한 마음으로 남을 나보다 높이며 나의 신념을 발표할때에도 겸손으로 말하며 세상 조류를 거서려 미움 받을 용기를 가져야 할것이다. 내가 선 자리에서 이웃을 도우며 하나님의 선한 일을 열심히하며 고통에 복음으로 답하는 크리스천이 되어야 할것이다. 복음과 문화가 충돌할 때 "counter culture" 데이비드 플랫 지음 중에 2018. 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