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로운 정서는 복음적 겸손을 수반한다. 


1. 생명 있는 사람은 

자신이 체험한 것이나 발견한 것으로 거만해지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 체험을 믿고 

그 체험들을 의로 삼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그가 겸비한 어휘들을 사용하고 자기 체험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행하신 위대한 일들이라고 말하며, 

그것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다른 사람들에게 종용할 수도 있다 하더라도, 

자기 체험을 자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속이는 사람이다. 

마치 자기 체험이 자기의 어떤 권위를 나타내는 것처럼 말이다.



2. 체험을 자신의 권위로 보는 사람은, 

하나님도 자기가 보는 대로 체험을 보신다고 판단한다. 

그는 자기 속에 하나님이 대단하게 보시는 그 무엇이 있다고 믿는다. 

그는 기도할 때도 이러한 용기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선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많은 것을 받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사랑하시고, 

그리스도의 의로 자기를 옷입혀 주실 의향을 가지고 계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은 자기가 체험한 것들과 자기가 가지고 있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움직이신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매우 높은 정도로 자기의 의를 의존하여 살아가는 방식이다. 

그러한 사람들은 지옥으로 통하는 고속도로에 들어있는 셈이다.


3. 어떤 사람들은 행위를 사정없이 깎아 내리고, 

믿음을 행위와 대적시켜 사정없이 올린다. 

그러면서 자신들이야말로 율법적인 정신을 가진 사람들과는 

전혀 다른 복음적인 사람들로 내세운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의 방식을 

진보시키는 훌륭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들은 사실 값없는 은혜의 복음적 방식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사람들이고, 

순전하고 겸손한 기독교에 가장 위험천만한 반대자들이다. 

대단한 겸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할 수도 있습니다. 

마치 율법에 대해서 죽고 자신을 비운 사람처럼 행동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뽐내고 우쭐대는 일 가운데 하나이다. 

그러나 행실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자기 의에 가장 충만한 심령을 보인 사람이었다.


4. 또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을 온전히 비웠다고 생각하고, 

자신들은 먼지 아래서 낮아졌다고 확신한다. 

그런데 할 수 있는 한 

자기 자신의 겸손의 영광을 거머쥐려고 애쓰고 있으며, 

자기 자신이 비하된 데 대해 대단히 큰 평가를 하고서 

그것으로 하늘에까지 올라가려고 애를 쓴다. 

그들의 겸손은 부풀어 오르고 자신에 차 있으며 

겉으로 내세우는, 자만하는 겸손이다.


5. 겸손의 모습을 위장한 영적 교만의 질병 아래 있는 사람은 

자신의 종교적인 업적을 크게 생각하며, 

그것이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차이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자신에 대해 생각하기를 

자기는 뛰어난 성도요, 성도들 중에 매우 높은 위치에 있으며 

특히 선하고 위대한 체험들을 한다는 식의 생각에 빠져들기 쉽다.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18:11). 


“나는 너보다 거룩함이니라”(사65:5). 


그들은 자연스럽게 그리스도께서 정죄하신 

가장 높은 상석을 차지한다(눅14:7). 

그러나 겸손, 또는 참된 마음의 겸비함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낫게 생각하게 만든다(빌2:3).


겸손(Humility)은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주셔서 

조그만 깨달음이 있었을지라도, 

나의 교만으로 인해 영적 열매가 미미함을 송구하게 생각하며, 

길을 걸어가는 강도에게 나만큼의 은혜를 주시면 

더 탁월하게 깨달아 수많은 영혼을 살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나보다 남을 낫게 여기는 것이다.


요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신앙 감정론)”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