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최초로 기도가 언급된 곳은 창4:26이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에서 불렀더라는
히브리어로 카라(קָרָא)인데
신4:7에서는 ‘기도하다’로 번역했다.
‘비로소’라는 말은 에노스를 낳기 이전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없었다는 뜻이다.
그런데 왜 에노스를 낳고부터 기도하게 되었을까?
에노스(אֱנוֹשׁ 에노쉬)란 ‘사람, 인간’이란 뜻이다.
그러나 원형인 아나쉬(אָנַשׁ)는 ‘약하다, 병들다, 깨지기 쉽다’
라는 뜻을 갖고 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고후4:7)라며
사람을 깨지기 쉬운 질그릇에 비유한 것은 정확한 비유였다.
아담은 두 아들을 잃었다.
둘째 아벨은 형 가인에게 맞아 죽었고,
살인자 가인은 방랑자가 되어 잃었다.
그러고 나서 얻은 아들이 ‘셋’이었는데
이 ‘셋’에서 태어난 아들이 ‘에노스’다.
에노스는 병치레를 자주했고 너무 약했던 모양이다.
당연히 아버지 셋과 할아버지 아담에게는
큰 근심이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결국 아담과 셋은 허약한 에노스를 위하여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사형통할 때 사람들은 기도하지 않는다.
아쉬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험이 왔을 때, 큰 병에 걸렸을 때,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쳤을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기 시작한다.
창5:21~22을 보면
에녹이 300년간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런데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게 된 동기가
‘므두셀라’라는 아들을 낳고 나서부터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므두셀라란 ‘창던지는 사람’이란 뜻이다.
고대시대 때 창던지는 사람은 제일 앞장서서 싸웠다.
그가 이기면 그 부족이 승리하는 것이고,
그가 쓰러지면 패하는 것이 되었다.
따라서 창던지는 사람이란 싸움을 잘하는 싸움꾼이다.
자식이 싸움꾼이 되었으니 부모에게 얼마나 큰 근심이 되었을까.
그래서 이때부터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하나님을 의지한 것이다.
유니게라고 하는 여성이 열심히 기도생활을 하게 된 동기도
알고 보면 자주 병나는 허약한 아들 디모데 때문이었다
(딤전5:23, 딤후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