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낭독의 발견>이라는 TV프로그램에서 원재훈 시인이 이런 말을 했다.
「작년 가을에 잠자리 한 마리가 사무실로 날아 왔습니다.
사무실에는 아홉 개의 창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잠자리가 나가지를 못하는 겁니다.
잠자리는 아시다시피 곁눈, 홑눈 합해서 만 개의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만 개의 눈이 다 필요 없었습니다.
창밖으로 나갈 수 있는 한 개의 눈만 있으면 되는데,
그 한 개의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을 보고 생각했습니다.
아, 난 지금 만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 개가 필요한데….」
만 개의 지식이 있어도 결정적인 한 가지 지식이 없어 무너진다.
인간의 지식과 기술은 만 개, 백만 개로 놀랍도록 발전했다.
그러나 만물과 인간의 기원, 죽음, 그리고 죄 사함 등
결정적인 주제에 있어서는 젬병이다.
인간의 근본을 다루는 인문학도 이 문제에 있어서는
교묘하게 주제를 피해가거나 말장난 수준에 머문다.
프란츠 카프카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에게는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길이라고 부르는 것들은 방향일 따름입니다.>
천 개의 문제에 대한 하나의 대답이 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을 찾아내는 결정적인 한 개의 눈이 있다.
(한재욱, 인문학을 하나님께)
그 한 개의 눈이 무엇일까?
그 정답은 성경에 있다. 성경은 그 정답을 이렇게 말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요한복음 14:6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