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내 나이는 50세였고 아내와 나는 잘 살고 있었다.
활달한 두 딸이 있었고 육백평 규모의 집과
네대의 BMW 승용차와 컨트리 클럽 회원권도 있었다.
내가 죽고 싶을 이유는 전혀 없었다.
내 딸 쥬디(Judy)는 보스톤 대학교의 학생이었는데
어느날 전화를 걸어 자신이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와 임금으로 영접했다고 했다.
- 유대인과 크리스챤
"쥬디! 넌 유대인이야!" 난 계속 말했다
"너는 예수를 믿어선 안돼, 아니, 믿을 수 없어!
어떻게 한 사람이 북쪽과 남쪽으로 동시에 갈 수 있니."
딸애는 유대인은 지금껏 항상 예수님을 믿었었다고 주장했다.
전화를 끊고나서 아내 에텔과 나는 서로를 껴안고 흐느낄 수 밖에 없었다.
어째서 이런 일이 우리에게 생길 수 있을까?
내게 "그리스도" 또는 "크리스챤"이란 단어는
십자군이나 종교 재판, 나치의 유대인 대학살,
또는 내가 직접 경험한 유대인배척에 속한 단어였다.
나는 그런 것들을 최대한 멀리 하려고 노력했었다.
-- 그런데 이제 쥬디가, 내 맏딸이 적군에게 가담했다는 말을 했던 것이다.
- 유대의 메시야
쥬디가 기숙사에서 돌아와 집에 있는 동안 우리는 10일간 내내 다투었다.
내 딸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우리에게 설명해 주었다.
그리고 오랜 다툼후 그 애는 말했다.
"아빠, 아빠 스스로 성경을 읽어보세요."
쥬디가 기숙사로 돌아간 날 밤
나는 신약 성경을 집어들고 마태복음서를 읽기 시작했다.
유대인을 향한 증오와 멸시가 가득할 것을 예상했었다.
하지만 내가 읽은 것은 전혀 내가 예상치 못했던 것이었다.
그 책은 유대인이 다른 유대인을 위해 썼고,
그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메시야에 대해 씌여 있었다.
나는 사도행전의 베드로의 이야기까지 읽어나갔다.
베드로는 유대인이고 이방인인 고넬료에게
유대의 메시야에 대해 가르치고 있었다.
사도행전 10장에서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 베드로를 봤다
"어떻게 이런 일이... 메시야는 유대인을 위한 것이고
저들 이방인을 위한 것이 아니지 않는가"
나는 성경을 덮고 어떻게 예수가 유대 메시야에서
이방의 메시야가 되었는가 생각하기 시작했다.
나 스스로 그것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 답하기 어려운 의문
나는 스스로 답하기 어려운 의문을 안고 있었다.
그 첫째는 내가 하나님을 믿었던가?
- 이것에 대해서는 "그렇다"고 답하기로 했다.
둘째 의문은 더욱 어려웠다.
"나는 성경이 거룩한 감동으로 씌여졌다 믿었던가
아니면 단순히 유대 사람들의 이야기라고 믿었던가?"
그렇게 오래전에 씌여진 이야기들이 어떻게
그것이 진실이 아니라면 오늘날 모두 응하여질 수가 있는가?
셋째는 "구약 성경이 오시는 메시야를 예언하는가?"
나는 40가지 예언에 대해 촛점을 맞추었다.
한 사람이 그 모든 예언을 응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되는가?
나는 "국제 메시야를 기다리는 유대인의회"에 참석하기로 했다.
난 그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와 논쟁했다.
그럴수록 나는 점점 더 믿기 시작했고
나는 내 안에 극심한 혼란을 느꼈다.
내가 죽기보다도 더 싫어했던 것이
바로 예수가 우리의 메시야란 것을 믿는 것이었다!
- 진리의 권능
그 회의에 참석한 어느날 아침
나는 나의 기도를 "예수님 이름으로" 드렸다.
나는 그분이 진리시란 것을 깨달았다.
진리의 권능이 내 안에서 폭발하는 화산처럼 솟아 올랐다.
나는 웃고, 울고, 뒤범벅이 되어 내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우리는 딸애의 문제로 인해 각기 메시야에 관해서 연구해보기로 했었다.
그런데 내 아내는 전화를 걸었을때
이미 자신과 둘재 딸 모두 예수의 사람이 되었다고 말했다.
나의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하나님은 그의 지혜를 따라 유대인을 선택하셨다.
우리 유대인들은 그것이
우리들이 무척 특별한 존재였기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 유대인이 선택된 이유는
모든 나라 중에 가장 작고 약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약한 가운데 전능자의 강력을 얻었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는 바로 하나님이 보내신 독생자로
하나님의 백성을 산고 끝에 낳기 위해 오신 분이다.
- 그는 이스라엘의 면류관에 박힌 귀한 보석이다.
당신의 삶을 돌아보라.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투쟁, 돌진, 흥분, 억압, 앞으로 가려는것? 뒤로 발목잡힌 것?
우리의 대부분은 이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있는 것이 그 삶이다.
우리에겐 언젠가 이루고 싶은 꿈도 있고
자고 일어나면 깨끗이 잊고 싶은 것들도 있다.
성경에서는 예수께서 모든 것을 새롭게 하려고 오셨다고 한다.
만약 당신에게 당신의 삶을 맨 처음,
깨끗한 상태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어떤 삶을 살겠는가?
- 소망이 있는 삶
평화를 원한다면 삶의 균형을 잡는 방법은 있다.
아무도 완벽할 수는 없고 완벽한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우리 각 사람은 모두 그리스도 예수,
하나님의 아들을 통해 하나님과 사귐을 가짐으로서
삶에 "완벽한" 영광을 누릴 기회를 갖고 있다.
예수님을 영접하려면 기도해야한다.
기도란 하나님께 이야기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마음)을 아시니
무슨 말을 해야할까 망설일 필요가 없다.
혹 도움이 된다면 이런 기도를 하면 좋다:
주 예수님, 개인적으로 주님을 알고 싶어요.
내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 감사합니다.
내 삶의 문을 열어드리니 제게 오셔서 나의 구주와 임금이 되어주세요.
내 삶을 주관해 주세요.
내 죄를 용서해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내게 영생 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저로 하여금 주께서 원하시는 이가 되게 해 주세요.
만일 이 기도가 당신의 마음과 같다면 지금 당장 기도하세요.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그가 약속하신대로 당신의 삶에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를 당신의 삶에 초대했다면
주께서 당신의 삶에 임재하심과
주께서 다시는 당신을 떠나지 않으실 것과 또
당신이 영생을 얻은 것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세요.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
또한 그가 얼마나 당신을 사랑하시는가 하는 것을 배워갈수록
충만한 생명을 경험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