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로마압제에 가혹한 세금징수에 시달리면서
지독한 삶의 무게에 눌렸고 엎친데 덮친격으로 로마에 돈을 바쳐
제사장직을 매수한 종교 기득권으로부터 종교적 멍에를 매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로마의 압제와 종교적 무거운 의무로 인하여
그들의 삶은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주 예수님께서 혜성처럼 나타나셨고
삶의 지치고 종교적 무거운 의무에 지쳤던 그들에게는
본문 말씀이 오아시스와도 같은 말씀으로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이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께서 그들을 로마의 압제와 종교적 무게에서 해방시켜주실것을 고대했는데
십자가에서 허무하게 돌아가시는 모습을 지켜보고
많은 사람들이 큰 실망감과 허탈감에 빠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에서도 이 말씀을 무기로 삼아 전도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많은 불신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오아시스처럼 느끼고 들어와서는
오히려 교회 안에서 더욱 무거운 종교적 의무를 안게 되고
오히려 실망만 하고 교회를 떠나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경우를 속된 말로 세상의 무게의 혹 떼러 왔다가
오히려 종교적 혹 하나가 더 붙은 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 등장한 '멍에'라는 말은
소가 농부의 손에 이끌려 밭의 일을 할 때 메는 그 멍에를 가리켜 하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밭에서 비교적 가벼운 난이도 낮은 일들을 할 때는
'호릿소'를 부리는데 소 한마리가 일을 하는 경우를 호릿소라고 하며
밭을 갈아엎는 등의 고되고 난이도 높은 밭일이 생길 경우
'겨릿소'라고 해서 두 마리의 소가 한 멍에를 매고 함께 일을 하게 됩니다.
이 때 경험많고 일 잘하는 '안소'가 오른쪽을 차지해서 일을 하고
이제 일을 갓 배우기 시작한 미숙한 '마랏소'는 왼쪽에 서서 일을 배우면서
'안소'를 따라갑니다.
농부가 쟁기질을 할 때 회초리를 오른손에 잡고 일하게 되는데
오른쪽에서 일하는 경험많은 안소가 제대로 일을 진행해 나가면
마랏소가 저절로 안소를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만일 고되고 난이도 높은 일을 미숙한 마랏소에게 혼자 맡겨 일을 시키면
얼마의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 소는 탈진해버리고 병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미숙한 마랏소라고 하더라도 옆에 노련한 안소가 있으면
마랏소는 크게 힘들이지 않고도 안소로 말미암아 큰 일을 잘 감당해 낼수 있게 됩니다.
앞서 설명드린 경험많은 안소와 미숙한 마랏소가
함께 일하는 겨릿소가 구약성경에도 등장하는데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엘리야는 자신의 후임으로
엘리사를 지명한다는 의미로 자신이 입고 있던 옷을 벗어 엘리사에게 던집니다.
이때 엘리사는 밭을 가는 열 두번째의 겨릿소를 끌고 있다가
이러한 엘리야의 갑작스런 부름을 받고 그는 즉각적으로 응답하여 따라갑니다.
성경은 스승인 엘리야와 제자인 엘리사와의 만남의 장면에
특별히 겨릿소 열 두 쌍을 함께 등장시키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열 두 제자를 부르시는 주님의 모습과도 오버랩되며
특별히 수제자인 베드로와의 만남에 대한 복선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되었든 이제 두 사람은 겨릿소와 같이 한 멍에를 메고 가게 되는데
안소의 역활인 엘리야는 마랏소의 위치에 있는 제자 엘리사에게
부지런히 가르쳐주변서 두 사람이 언제나 함께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엘리야가 승천한 이후에
엘리사는 스승보다 두 배나 더 큰 영감을 구했고
엘리사의 간구대로 그는 이제 위대한 하나님의 선지자로써의
큰 사명을 잘 감당해내게 됩니다.
만약 엘리사가 이렇게 엘리야와 함께 한 멍에를 매고 배우지 않았더라면
이스라엘을 감당해야 하는 막중한 사명을 그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로 하여금
함께 주님과 함께 멍에를 메고 가자고 우리를 부르고계십니다.
마치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무개야 나와 함께 멍에를 매고 함께 가자꾸나
내가 친히 안소가 되어서 모든 것을 감당할테니
너는 그냥 나를 따라오면서 배우기만 하면 된단다.
그러면 네가 나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게 된다면
너는 능히 너의 삶의 무게를 능히 이겨내고
하나님의 위대한 사명을 잘 감당해 낼 수 있을 것이야!"
우리는 혼자서 이 세상의 삶의 무게와
또한 하나님의 일을 동시에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들고 벅찹니다.
그러나 안소이신 주님과 함께 한겨리로 짝을 이루어
그분의 멍에를 함께 메고 그분께 나아가 그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고 함께 일한다면
그 어떤 세상의 무거운 짐과 하나님의 크신 사명도
이제는 더 이상 무겁거나 수고스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랏소는 그저 안소가 가는대로 함께 따라가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주님께 한 짝을 이루고 그분이 인도하시는대로
따라가는 것이야 말로 참된 쉼이고 안식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주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그분과 함께 멍에를 매고 배우다 보면 어느새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어느새 우리로 하여금 안소의 위치에 서게 하실 것이며
또 다른 마랏소와 같은 사람을 우리에게 짝지워 주시며
주님의 멍에를 매워서 또 다른 제자를 삼으라고 하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