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을 위한 기도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들이 지루했습니다
모두 다 훌훌 털어버리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해보았습니다.
날마다 반복되는 지루한 일상들을 다시는 반복할 수 없을 
어느 날을 말입니다.

새벽녘 현관에 던져지는 신문 소리, 아침을 알리는 자명종 소리
이제 곧 전동차가 도착한다고 알리는 벨소리
늦을까 서두르는 발자국 소리, 어디선가 나를 찾는 핸드폰 소리
밤바람에 꽃잎이 떨어지는 소리, 신호등이 파란불로 바뀌는 소리
주룩주룩 한바탕 퍼붓는 소나기 소리
늦은 밤 텔레비전에서 저 혼자 흘러나오는 애국가 소리
가슴에 아롱아롱 열매로 매달려 있는 삶의 소리들.

다시 들을 수 없다면
다시 맞을 수 없다면
어느 것 하나 눈부시지 않은 순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헛되이 흘려버릴 순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가슴 깊이 새기지 않을 순간이 없을 것 같았습니다.

스치는 바람 한줄기
나부끼는 나뭇잎 하나
떨어지는 꽃잎 한 장
모두 다 가슴에 새기게 되더군요
더러 서운하고 억울하더라도
허허 웃으며 돌아서게 되더군요.

그 동안 얼마나 많은 순간을 그저 무심히 보냈는지.
그 사이 우리의 차가운 눈빛에 아파하고
우리의 가시 돋친 말에 찔리고
우리의 의미 없는 행동에 멍든 사람은 없었는지요
내가 당신을 아프게 하지는 않았는지요.

권대웅(시인, 19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