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찬 목사
문화선교연구원(원장 백광훈)에서
캐나다 컨넥서스교회 캐리 뉴호프(Carey Nieuwhof) 원로목사가
온라인 매체 ‘처치 리더스’에 게재한 글을
“올해 교회가 주의해야 할 6가지 동향”
이란 제목으로 소개한 바 있습니다.
“1. 신앙을 소비하는 사람들은 이전보다 더 빨리 사라질 것이다.
2. 멋있기만 한 좋은 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3. 비신자와 소통하지 않는 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4. 이성 중심의 설교와 감성 중심의 설교를 통합하지 않는
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5. 조용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에게
소속감을 주지 않는 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6. 출석만 강조하고 참여를 독려하지 않는 교회는 사라질 것이다.”
뉴호프 목사는
“교회 리더들은 해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있는 시대변화를 준비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 적극 대비하고
주의해야 할 교회의 흐름을 소개한다” 고 그 이유를 밝혔습니다.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기준이라 생각되어
제 자신과 섬기는 교회를 돌아보았습니다.
시대를 읽고 변화를 준비하는 데는 유익한 면이 있지만,
제 상황에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암만 추슬러 살펴도 더 이상 소통하고
참여시킬 신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섬기는 교회는 이제 40여명(어린이까지) 모이는 작은 공동체로,
모든 교우들이 지금 헌신하는 것만으로도
지나칠 정도로 충분히 충성하고 있습니다.
아직 섬김 받아야 할 어린 지체이면서도, 누구 할 것 없이
청소, 식사준비, 찬양대, 교사, 선교, 전도 등
온갖 일에 자원하여 겹치기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한 주간이 어찌나 빠른지
KTX 에 주마등처럼 후딱 지나갑니다.
개척교회 목사는 예배당 문에 눈이 고정되어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누군가 등록하러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 맘으로 13년간을 견뎌왔습니다.
그러니 “신앙을 소비하는 신자, 멋있기만 한 교회, 조용히 다니는 신자,
출석만 하는 신자”라도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누군가 그랬다지요.
“사랑할 시간도 없는데 어떻게 미움이 있을까”
정말 그렇습니다.
미워하거나 불평하고 삐질 겨를이 없습니다.
목사는 하루 종일 예배당에 살면서 설교만 준비합니다.
말씀이라도 잘 준비해 진수성찬으로
지체들을 대접해 드리고 싶기 때문입니다.
신자들이 하나님의 신령한 양식을 공급받을 뿐만 아니라
생업의 복도 받아 누리길 바라서
새벽마다 일일이(지금은 나오지 않는 신자까지)
이름을 불러가며 축복합니다.
아무리 해도 늘 불충한 종만 같아
날마다 강대상 옆에 잠자리를 펴고 눈을 붙입니다.
경제학자 조셉 슘페터(J. Schumpeter)는 경제발전을 설명하면서
“창조적 파괴”라는 말을 사용했습니다.
기술혁신을 통해 낡은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여 변혁을 일으키는 과정적 개념을 가리킵니다.
그는 『경제발전론』이란 책에서
“이윤은 혁신적인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 행위를
성공적으로 이끈 기업가의 정당한 노력의 대가이며,
그것을 다른 기업이 모방하면서 이윤은 소멸되고,
새로운 혁신적 기업가의 출현으로 다시 사회적 이윤이 생성된다.”
고 했습니다.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불러일으키는 가장 큰 요인을
“창조적 파괴”로 보았습니다.
특히 경제발전 과정에서 기업가의 창조적 파괴 행위를 중요시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기술혁신을 알아보고 자본을 제공하는 은행가(금융)나,
자본가의 창조적 파괴가 일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은행은 더러 있지만,
그 사람의 비전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은행은
그리 많지 않다는 데 있습니다.
“창조적 파괴” 행위를 시도하는 자본가가 필요한 때입니다.
하나님이 자본가라면 어떤 교회에게 투자하실까?
1. 오직 성경을 따라 사는 자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 사는 자입니다.
3. 오직 은혜로 사는 자입니다.
4. 그리스도를 위해 핍박당하는 자입니다.
5. 하나님과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자입니다.
6.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입니다.
7.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자입니다.
물론 다른 차원에서 정리할 수도 있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네 입을 크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시 81:10)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 “입”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페”(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