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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여 그분 자신과 같이 됨으로 영광 가운데 계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낙원에서 사람 앞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는데 이르는 두 길이 제시되어 있었습니다.
이 두 길은 두 나무로 예표되어 있었는데, 하나는 생명나무이고 하나는 지식의 나무입니다. 하나님의 방법은 전자, 즉 생명을 통하여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같이 되며, 하나님의 뜻 안에 거하고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함으로 사람이 온전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사탄은 사람에게 다른 한 나무를 천거하면서 지식이 사람을 하나님과 같이 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확신시켰습니다.
사람이 순종으로 인한 생명보다도 지식의 빛을 선택했을 때 그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끔찍한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알고자 하는 욕구가 그에게 커다란 유혹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성품은 전부 부패되었고 그에게는 지식이 순종이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지식으로 행복을 약속하는 이러한 속이는 세력 아래서 인류는 빗나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지식은 참된 신앙과 하나님 자신의 계시와 연결되어 더욱 끔찍한 세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때에도 세상 지혜와 육체의 지혜가 들어옵니다.
또한 영적인 진리를 성령의 생명 안에서 받아들이지 않고 육체의 지혜로 받아들일 때 그 능력이 상실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진리가 우리의 속부분에 들어올 때 진리는 거기서 영의 생명이 됩니다. 그러나 육체의 능력으로 안 진리는 단지 우리 혼의 겉부분, 즉 우리의 지성과 이성에만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진리가 혼의 겉부분에 자리잡고 있어서 그 영향력과 능력이 행사될 것이라는 상상으로 만족케 하는 한, 그것은 인간의 논쟁거리와 지혜에 불과하게 되며 결코 영의 생명에 이를 수 없습니다.
이러한 이해와 느낌에 속한 진리는 다만 타고난 본성으로 아는 성경지식으로서 인간의 상상이나 형식일 뿐이며 하나님의 진리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본질과 실제가 되는 진리는 그것을 붙잡은 사람에게 실지로 그 생명이 소유한 것을 전달해주는데, 그것이 다른이들에게는 다만 생각과 말뿐인 것입니다. 그림자와 형식과 사상 속에 존재하는 진리는 다 율법(기록된 문자인면의 성경)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대교는 그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인 진리, 하나님의 생명인 진리는 예수께서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신 독생자로 오실 때 가져오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이 ‘진리’이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