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목사님들을 통해, 많은 서적을 통해,

많은 설교를 통해 우리는 끊임없이

'성령의 인도를 따르라. 성령에 복종하라' 라는

말을 참으로 많이 듣습니다.


이 성령의 인도가 모든 문제 해결의 답인 것처럼 들립니다.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여러분의 인생은 술술 풀릴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죄를 짓지 않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육신을 이기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언제나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설교를 정말 많이 듣고,

들을 때마다 큰 목소리로 아멘으로 답합니다.


그런데,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받기 싫은 성도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인도가 무엇인지,

어떻게 받아야 하는 것인지 모르는 성도는 많습니다.


정말 궁금하여 성숙한 성도에게 물어보면,

성경을 읽으라! 말씀을 들으라! 찬양을 부르라!

말해주기도 하고 혹자는 골방에 들어가

기도로 응답이 올 때까지 잠자코 앉아있으라고 합니다.


그럼 우리 가슴은 먹먹하고 답답해집니다.


예상했던 답변이고,

우리에게 실제적인 도움과

현실의 삶에는 아무런 적용이 안되니까요.


우리는 현실에서 승리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성령의 인도가 무엇인지 알고 싶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설교를 통해 조명해주신 깨달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은

결코 성령의 강권적인 주도와 이끌림에

우리가 자연스럽게 끌려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엄연히 우리의 '선택함'이 포함되어 있는 말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선택함'을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성령의 인도와 반대되는 인도가, 마귀의 인도입니다.

이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마귀의 인도를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마귀의 인도함을

'선택함'을 포함하고 있는 말입니다.


즉, 날마다 하나님께서 이리로 가거라, 이것을 하거라,

저 자에게 말을 걸거라. 하고 특정한 방향이나

방법을 지시해 주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이 들릴 때

성령의 음성을 선택하는 것이

성령의 인도를 받는다는 말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그럼 '아니 그러면 똑같이 애매해지지 않습니까!

성령의 음성을 어떻게 듣는지 모릅니다!'

하고 질문이 떠오르시나요? 제가 그랬습니다.



성령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은 결코

발견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오늘도 성령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을 수없이 들었습니다.



제가 오늘 하루 들었던 성령의 음성과

마귀의 음성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제가 급한 일이 있어서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가야 했습니다.

그런데 횡단보도가 제가 도착하니 불이 바뀌어서

건너지 못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초조해하며 그 자리에 섰는데,

그 도로 자체가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도 많이 다니지 않았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리속에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1)

시간이 없는데 그냥 건너자,

나를 기다리는 사람에게 누가 된다.


(2)

시간이 없더라도 규칙을 지키자.

그리고 늦으면 사과를 하자. 다음부터는 늦지 말자.


저는 2번을 선택했고, 다행히 늦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눈치를 채셨겠지만

1번이 마귀의 음성이고 2번이 성령의 음성입니다.


우리는 성령의 음성이 듣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언제나 우리에게 속삭이고 계시기에

우리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다만 마귀의 음성을 자주 선택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지나가다가 구걸하는 자를 보면 사람들은

세상 쉽게 살려고 한다고 손가락질을 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을 조용히 두드리며

불쌍히 여겨 돈을 쥐어주자는 음성이 들리지 않던가요?

그리고 동시에 사람들도 보는데 이상한 사람 되지 말고

갈 길 가자는 음성도 들리지요.


야심한 밤에 홀로 침대에 누워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시는 남자 지체분들, 우리는 순간마다 찾아오는

음란에 대한 음성에 많이 넘어지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자각합니다.


음란을 저지르기로 선택하는 직전의 순간까지도

가슴을 쿵쿵 울리며 마음속에서 들리는

'하지마. 하면 안되.'라는 음성을 말입니다.


한 사람이 다가와 남에 대한 험담을 늘어뜨릴 때,

우리는 이 험담을 거절하고 뒤로 물러나자는 음성

이 사람과의 인간관계도 중요하니까 험담을 들어주며

함께 웃음이라도 지어주자는 음성이 분명하게 들려옵니다.


그리고 매 순간, 사람과 사람대로 만났을 때

복음을 전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자는 생각과

개독교라고 욕먹고 날 광신도나 이상하게 생각할테니

입 다물자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너무나도 큰 죄를 지었을 때,

즉시 하나님께 회개하자는 생각이 드는가 하면

동시에 염치가 없으니 지금은 말고

다음에 회개하자는 생각이 우리를 휘어잡습니다.


많은 예를 들어보니 우리는 이제

성령의 음성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참 많이도

마귀의 음성을 '선택해왔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니 우리 이제, 성령의 음성을 선택하기 시작해봅시다.

그럼 비로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전 글에서도 말했듯이,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성령의 음성을

선택할 힘이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의 음성을 선택할 힘은

기도를 통해 나님께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우리 스스로는 고장난 육체의 힘에

너무나도 쉽게 끌리기에

하나님이 주시는 힘이 없으면 성령의 음성을 선택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언제나 독립되어 있지만,

동시에 우리의 자유의지는 언제나 성령과 마귀의

두 영역 사이에서 영향을 받게 됩니다.


기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성령을 선택할 힘을 공급받지 못하면

우리의 자유의지는 마귀의 영역으로 쏠리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점차 죄에 대한 민감도가 둔해지기 시작할 것이고

죄책감과 양심이 마비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힘을 공급받게 되면,

성령의 영역으로 우리의 자유의지가 쏠리게 될 것입니다.


이 때 우리는 기쁨으로 성령의 음성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


이를 순종이라고 말합니다.

이를 성령충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점점 변해가는 모습을 '성화'라고 합니다.


자, 이제 낙심하지말고 다시 일어서서

성령을 선택할 힘을 하나님께 구하며

지금 이 순간부터 성령의 음성을 선택해봅시다!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오라."는

음성이 벌써 들리는 것 같지 않나요!


아래는 깨달음을 주실 때, 조명해주신 말씀입니다.

묵상하시며 천천히 읽어보세요.

하나님의 속삭이심을 듣기를 기도합니다.



26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26]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따라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가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분명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열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25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26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라디아서 5:16-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