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결국에는 선을 이룹니다. 
우리에게는 범사가 유익하고 감사 한 것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죽은 것도 유익하다(빌 1:21)고 

믿음으로 담대히 말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비록 좋지 않은 것이라도 

그 속에서 감사할 이유가 거기에 한 가지라도 있기 마련입니다. 

자, 불길하고 어두운 상황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았던 

미국의 개척자 청교도들의 신앙을 살펴봅시다. 

1620년 12월 26일 찬겨울 미동북부 해안인 풀리머우스에 도착한 

그들의 일곱 가지 감사 조건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180톤 밖에 안 되는 작은 배이지만 

       그 배라도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둘째, 평균 시속 2마일(걷는 속도 보다 느리다)의 항해였으나 

      117일간 계속 전진할 수 있었음을 감사했다. 

셋째, 항해 중 두 사람이 죽었으나 

      한 아이가 태어났음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넷째, 폭풍으로 중심 되는 큰 돛이 불어졌으나 

      파선되지 않았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다섯째, 여자들 몇이 파도 속에 밀려들어갔으나 

       모두 구출됨을 하나님께 감사 드렸다. 

여섯째, 인디언들의 방해로 상륙지를 찾지 못해 

         한 달을 바다에서 방황했으나 호의적인 원주민이 사는 

         상륙지점을 허락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다. 

일곱째, 고통스러운 삼 개월 반의 항해 중 단 한명도 

        돌아가자는 사람이 없음을 하나님께 감사했다.


감사가 이쯤 되면 전천후 감사라 할만 하지 않습니까? 
기분 좋을 때만 감사한다면 이것은 이방인의 감사입니다. 

지금 내 삶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고 

하나님 앞에 평화스런 얼굴을 들도록 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의 얼굴 모습을 살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