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은 부분적으로 육을 깨끗하게 만든다면, 새 창조는 육과 영, 모두를 깨끗하게 합니다. 전자가 손발로 옳은 일을 행하게 한다면, 후자는 마음을 청결하게 합니다. 전자가 몸을 씻는 것이라면, 후자는 영혼의 모든 부분을 씻어내는 것입니다. 전자는 잘해야 생명의 등 안에 들어 있는 기름일 뿐이지만, 후자는 그 등과 도관 자체에 들어 있는 기름입니다. 전자가 외적인 자세와 옷 입는 것, 걸음걸이 등과 같은 모습의 변화라면, 후자는 본성과 마음, 영의 변화입니다. 전자는 어떠한 죄들을 싫어하기도 하지만, 후자는 모든 죄를 싫어합니다. 도덕적 성실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있겠지만, 만일 그것뿐이라고 한다면, 가장 좋은 것은 뒤에 숨겨둔 채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전자는 어떠한 불법적인 행동을 그만두기도 하겠지만, 그렇다고 새 마음을 갖는 것은 아닙니다. 전자가 육의 추잡한 일들을 집어던지는 일이라면, 후자는 성령의 열매를 낳은 새로운 뿌리입니다. 전자는 말씀을 듣고 외적 행동을 변화시킵니다. 어떤 이들은 일시적으로 새로운 말씀의 빛을 따라서 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후자는 하나님의 율법과 뜻을 잘 판단하여 진심으로 시인하면서 행합니다. 전자가 이성과 공의, 평등에 대한 자연적인 사랑에서 일어난다면, 후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에서 일어납니다. 전자는 추잡하다는 이유로 죄를 회피하지만, 후자는 죄가 된다는 바로 그것 때문에 회피합니다. 전자는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께 주목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분께서 제공하시는 그 무엇에 관심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지, 하나님을 찬양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 스테판 차녹(Stephan Charnock, 1628-1680)의 ‘거듭남의 본질’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