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에 이름에 감사하오리니(^mv-ta hdwaw;웨오데 에트-쉐메카) '주의 이름'이란 말 (^mv;쉐메카)는 '이름, 명성'을 뜻하는 (!v;쉠)과 2인칭 단수 대명사 (^;카)가 같이 나열된 것으로서 직역하면 '당신의 이름, 당신의 명성'이 된다. 시인은 주의 성전을 향하여 경배하고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을 인하여 경배하는 내용을 '그 이름(!v;쉠)'으로 밝히고 있다. 시인이 '그 이름(!v;쉠)'에 경배하는 이유는 구원하신 은혜에 감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이름'이라는 의미의 단어 (!v;쉠)이 '명성, 기억, 명예'라는 뜻을 동시에 갖는 것도 재미있다. 고대 히브리인들, 또는 가나안 인들까지도 이름은, 곧 그 사람의 명성을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 이름이 여러 사람에게서 기억되고, 기억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이름'이 '기억'이 되고 '기억'은 다시 '명성'이 된다는 말과 같은 뜻이 된다. 다윗이 이 시를 어느 시기에 적었는지는 구체적으로 알 길이 없지만, 저작하게 된 동기는 자신 앞에 당면해 있는 어려움을 타개하여 준 하나님께 감사 드리기 위함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시 전반에 찬양과 감사가 흐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예배란 하나님의 총체적인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구리가 하나의 실존으로 존재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생존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받아 영생을 확보한 것도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앞에 남아 있는 생애와 모든 장래 일을 하나님께서 책임져 주시리라고 확신하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따지고 보면 하나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그 은혜에 보다할 길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은혜는 우리들의 공로나 노력 따위로 갚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배란 바로 이렇게 인간적인 노력이나 공로로 갚을 수 없는 하나님의 총체적 은혜에 대한 최대 최상의 보답 행위요 감사의 표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 이상의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시고 이 예배를 최상의 은혜 갚음으로 여기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1. 실존에 대한 감사 이사야는 하나님을 가리켜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너를 조성하신 자'(사43:1)라고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는 반드시 우리 개개의 실존에 대한 감사가 함의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때때로 인생의 쓰라린 좌절과 실패를 경험할 때 부모를 원망하고 조상을 원망하고 심지어는 하나님을 원망할 때가 있습니다. 자신의 불우한 처지와 환경과 관계된 모든 대상을 원망의 대상으로 삼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모든 처지와 환경은 조상들이 물려주신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섭리해 주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러한 환경을 주신 것은 환경에 지배되어 운명적인 삶을 살라고 주신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러한 환경을 통해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발견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승리하는 삶을 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안목으로 바라볼 때 우리의 환경은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모든 환경을 초월하여 실존에 기초한 감사와 찬양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참조; 욥1:21). 인생이란 의미 없이 왔다가 의미 없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나고 하나님의 돌보심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매우 고귀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통해 이러한 귀중한 실존을 창조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2. 생존에 대한 감사 예배에는 또한 생존에 대한 감사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습니다. 옛날이나, 과학이 극도로 발달하여 인간의 생명이 점점 더 연장되어 가는 오늘날이나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는 사고는 도처에 산재해 있으며 그 위험은 조금도 줄지 않았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환경 가운데서 우리가 건강히 살아 있다는 것은 하나의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러한 기적이 결코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니라 우리로 실족지 않게 하기 위해 졸지도 주무시지도 아니하시고 하나님께서 지키시기 때문이라고 고백했습니다(참조; 시121:3,4). 예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계시겠다고 굳은 언약의 말씀을 부셨습니다(참조; 마28:20). 따라서 이러한 하나님을 우리가 찬양하고 예배하는 일은 당연한 것입니다. 시편 기자는 '할렐루야 그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 권능의 궁창에서 그를 찬양할지어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시150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호흡이 붙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며 따라서 우리가 호흡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여호와를 찬양하는 것은 은혜받은 자의 마땅한 도리인 것입니다. 3. 구원의 은혜에 대한 감사 바울은 그의 서신에서 감사를 말할 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 기초 위에서 감사를 말하였습니다(참조; 롬7:25; 고전1:4; 엡5:20; 골3:17). 이는 하나님께 대한 성도들의 모든 감사의 이유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 결집되었음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가 없었더라면 우리의 실존이나 생존의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들로서 죄 가운데 태어나고 죄 가운데 살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엡1:3)라고 했으며, 베드로는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소망이 있게 하시며'(벧전1:3)라고 했습니다. 4. 장래 일을 책임져 주심에 대한 감사 마지막으로 예배에는 하나님께서 장래 모든 일을 책임져 주실 것을 믿고 드리는 감사의 의미가 함의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자신의 장래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람이 불안과 근심 속에 사는 것은 바로 이러한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물론 성도들이라고 자신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장래사를 아름답게 역사해 주시리라는 언약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의 삶을 세세한 부분까지도 아름답게 인도해 주신 기사 또한 가득합니다. 따라서 성도들은 이 신실한 언약을 믿고 매일의 삶을 기쁨과 평안 가운데 지내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것입니다. 이방인들의 예배와 성도들의 예배의 차이점을 성도들은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이교도들은 장래 있을 신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 예배 하지만 성도들은 장래의 모든 환난에서 우리를 건지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해 들이실 것을 믿고 감사해서 예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표현
a.하나님의 뜻이다(살전5:18) 1. 하나님께서 감사할 것을 명령하셨다 a.구원을 감사하는 절기를 지킬 것을 명령하셨다(출12:33) 2. 그리스도께서 감사의 모범을 보이셨다 a.진리에 대하여 감사하셨다(마11:25) 3. 감사해야 할 때 a.항상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살전1:2) 4. 감사의 이유 a.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주의 성실하심을 인하여(시89:1) 5. 감사의 방법 a.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해야 함(롬1:8) 6. 감사의 결과 a.태의 축복을 얻음(창4:1,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