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드리는 사람

 

사람은 필요에 의해 무엇을 만듭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물건은 반드시 용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도 사람을 창조 하실 때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예배를 통해 하나님께서 찬송 받으시는 것 이었습니다.

 

시편 기자는 시편 29:2절에서 이렇게 찬송을 드리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예배할지어다.”

 

이어 시편 66:2절 입니다.

그의 이름의 영광을 찬양하고 영화롭게 찬송할지어다.”라고

 

그리고 이사야는 사 43:21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 밖에도 성경 곳곳에서는 여호와께 영광, 찬송, 제사, 

예배라는 단어가 많이 쓰여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사람을 통해 

예배 받으시는 것이 목적인 것입니다.

 

웨스트민트 소 요리 문답 제1문에서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입니다.

답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₂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은 예배를 통한 찬송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예배를 통해 신령한 교통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예배를 통해 영화로워 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예배를 통해 약속하신 은혜를 내려 주십니다.

 

그렇습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날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영적 예배를 원하시고 그리고 이 예배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 4:24절에서 이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 지니라” 라고

 

오늘은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어떤 자세가 필요한지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거룩함입니다.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거룩해야 합니다.

왜! 거룩해야 하냐면 하나님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레위기 11:44절에서 모세는 이렇게 기록 하고 있습니다.

나는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이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몸을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고...”

 

그렇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죄 사함이란 흠이 없는 상태, 구별 된 상태, 거룩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에베소서 1:4~6절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 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의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거져 주시는 바

 그의 영광을 찬미케 하려는 것이라“라고

 

그렇습니다.

거룩함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악의 종에서 해방 되는 것입니다.

이 죄악의 종에서 해방이 될 때 비로소 거룩해 질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거룩함이란 다른 말은 무엇으로부터 구별 되었다는 말입니다.

알곡과 쭉정이와 구별, 양과 염소의 구별 그리고 썩어질 것과 

썩지 않을 것과 구별, 다시 말씀드려 돈, 권력, 명예, 인기, 쾌락만을 

쫒아 사는 세상 사람들과의 구별인 것입니다.

 

저는 거룩함이란 이렇게 말을 합니다.

화인 맞은 양심(딤전 4:2)으로부터 회복, 무식으로부터(딤후 2:23) 상식 회복,

그리고 염치 회복(잠 13:5) 그리고 인격(인간성) 회복 (공번 고후 13:9)이라고

 

이것들의 회복이야 말로 죄로부터 벗어나는 거룩함이며, 

세상으로부터 구별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양심, 상식, 염치가 회복 되어 

구별 된 사람인 줄 믿습니다.

 


두 번째 몸을 산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산제사에서 “산”이란 

헬라어“조산”이란 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의 뜻은 지금 살아있는 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제사는 소나 양을 잡아 피로 드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산제사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악으로부터 

구원 받은 내가 삶에 현장에서 성령의 역사로 삶으로 드리는 제사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는 삶이 산제사라는 것입니다.

 

저는 입버릇처럼 말합니다.

기독교의 이단은 삶 속에서 예수의 가르침이 나타나지 않는 것이라고...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라고

 

바울의 이 권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면서 

삶이 없이 신앙생활 하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저는 바울의 이 말을 이렇게 해석 하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형제가 된 형제들아 너희의 신앙생활을 보니 

화가 나지만 그러나 꾹 참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다시 한 번 너희에게 말한다.

 

제발! 너희의 신앙생활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희생이 있는 삶이 있기를 바란다.

제발! 너희의 삶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드러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의 몸을 제물로 하여 삶으로 드리는 제사를 기뻐 받으신다. 라고

 

어찌 보면 바울은 지금 우리 한국 교회에 권고 하는 말일 수도 있습니다.

교회에서는 목사요, 장로요, 권사요, 집사인데 신앙 따로, 생활 따로인 우리의 모습,

멀리서 보면 신앙이 있는 것 같은데 가까이에서 보면 신앙이 보이지 않는 우리의 모습,

 

그렇습니다.

바울의 이 선포는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가 산 제물이 되어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지, 정, 의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막 12:30)

그리고 영과 진정으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 하는 자세로(요4:24)

마음 없는 형식적 예배가 아니라 몸과 마음이 하나 되어 드리는 참 예배로(사 66:2~4)

 

그렇습니다.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예배는 입술에 있는 말이 아니라 매 순간순간이 삶으로 드려지는

행함이 있는 삶이 산제사이며,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영적 예배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로 부르신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오신 성령의 역사로 산 제물이 되어 예배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을 조금도 의심 없이 믿고, 전 인격적으로 드리는 예배,

하나님께서 나에게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귀를 기울여 경청하는 예배,

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삶으로 드려내는 삶에 현장 예배,

이렇게 예배를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영적인 사람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더러운 죄 때문에 멸시 천대 받으시다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 산제사의 모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산제사로 드리는 삶을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신 다고 말입니다.

 

아무리 비싸고 그리고 성능 좋은 차라고 할지라도 그 차를 누가 운전을 하느냐에 따라

도로의 흉기가 될 수도 있고, 사람들에게 편리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또한 가문 좋고, 돈 많고, 학벌 좋고, 건강 좋고, 환경이 좋은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 사람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은 마귀가 운전을 하는 사람이 것입니다.

 

악한 사탄 마귀에 의해 삶이 운전 되는 사람은 도로의 무서운 흉기 같은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양심도 없고, 상식도 없고, 염치도 없는 육신의 일을 쫒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롬 8:5~9절에서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쫒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의 일을 쫒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 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이니라”라고

 

지금 바울의 이 선포는 믿지 않는 로마인들에게 하는 말이 아니라 믿음으로 산다고 하는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는 말인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려 믿음으로 산다고 하면서 육신의 일을 쫒는 자들에게 하는 말인 것입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삶으로는 육신의 정욕을 쫒는 자들에게 하는 말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셔서 부르신 여러분!

오늘 나의 신앙의 모습이 바울이 언급한 모습이 아닌가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 하신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이루시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더러운 죄로부터 구원 받은 우리는 아담이 범죄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한 사람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과 속성을 회복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해야 합니다.

먼저 하나님 사랑, 두 번째 이웃 사랑, 세 번째 원수사랑, 네 번째 자연 사랑을 말입니다.

 

여러분도 잘 알다시피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은 사랑입니다.

이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가까이 오게 하셨습니다.

 

시편 65:4절입니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살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시고 뜰에 살게 하신 여러분!

이 사랑의 하나님을 산제사, 삶으로 예배하여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대는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자가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모든 가치관이 하나님보다. 사람보다. 사랑보다 돈, 권력, 명예, 인기에만 있습니다.

 

물론 돈 필요 하지요, 권력도 필요하지요, 명예도 필요하고 때론 쾌락도 필요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필요 없다고 하나님은 말씀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사람보다, 사랑보다 우선 가치로 여기며 살고 있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최순실로 인해 국민들이 허탈해 하고 있습니다.

설마! 설마 했는데 설마가 나라 잡아먹었다고 합니다.

 

아니! 이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에 이르렀냐고 하면서 이렇게 말 합니다.

할 수만 있다면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고 합니다.

 

이 모든 일들은 사람들 안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과 속성을 잃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과 속성을 잃어버린 사람들 안에는 사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사람들은 철저한 개인주의, 이기주의, 성공주의자들입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 생각하지 않고 자기 중심적, 자기 합리화를 하며 사는 사람들로

이들의 가치는 오직 돈, 권력, 명예, 인기, 쾌락에만 있습니다.

 

이것들을 위해서라면 타인의 생명은 말 할 것도 없으며, 자신들의 영혼도 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양심도 없고, 상식도 없고 염치도 없는 사람의 면모가 없는 경제적 짐승입니다.

 

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분명히 선포하고 있습니다.

배금주의, 황금만능주의, 성공주의를 쫒는 사람들을 본받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것은 말 할 것도 없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 저들을 구원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앞장을 서야 합니다.

 

네 번째는 마음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고후 5:17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고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성도들은 새 생명으로 새로워진 성도들인 것입니다.

 

죄로 더럽고 썩어서 냄새나는 육신의 모습, 사탄의 종노릇 하며 마귀가 주는 것을 먹고 살던

옛 모습을 하나님의 은혜로 벗고 새로워진 사람들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나에 죄 때문 이였다고 믿는 사람,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기 때문에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

비록 가진 것 없고, 몸이 불편해도 감사와 찬송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지금 천국에 살고 있다고 믿는 사람,

 

그리고 마침내 재림 나팔 소리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다고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 생명을 입고 새로운 마음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음이 새로워졌다는 것은 어떠한 동기로 마음에 변화가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의 변화는 일시적이고, 한시적인 변화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로운 피조물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오신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하나님의 나라에 갈 때 까지 지속적이고 계속적일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성도의 견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의 마음이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새로워지지 않으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악하고 더러운 세상의 것들로 가득 채워지고 맙니다.

 

저는 2년 만에 강대상의 종을 닦았습니다.

2년 만에 종을 닦다 보니 때가 많이 끼어 힘이 들었습니다.

 

저는 종을 닦으면서 생각을 했습니다.

주일 마치고 잠깐 닦았으면 오늘 이렇게 힘들게 닦지 않아도 될 탠데 라고

 

목욕을 자주 하는 사람은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으나

목욕을 자주 하지 않는 사람의 몸에서는 냄새가 심하게 납니다.

 

그렇습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영혼을 닦지 않으면 우리 영혼에서 냄새가 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 마귀는 지금도 우리를 유혹하고 있습니다.

옛것이 더 좋았다고, 애굽에 있었을 때가 더 좋았다고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오신 성령님의 역사로 인해 하나님의 말씀을 늘 가까이 하여

마음을 새롭게 하여 사탄 마귀의 유혹에서 벗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렇습니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므로 돌아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돌아보면 롯의 아내처럼 소금 기둥이 되거나 아니면 광야에서 뺑뺑 돌다 죽습니다.

 

이제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새 사람입니다.

새 사람은 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하신다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마음과 뜻을 다해 사랑하며, 원수를 사랑 할 줄 아는 사람,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십니다.

 

기독교는 영으로 예배를 하는 종교입니다.

교회 건물이 웅장하고 그리고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아무리 좋은 음향 시스템을 갖추고

성악을 전공한 성가대가 비싼 파이프 오르간에 맞춰 아름다운 목소리로 찬송을 한다고 해도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는 사람들에게 보여 지기 위한 형식적인 쇼에 불과 한 것입니다.

 

또한 설교자가 설교를 신학적, 교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인 예화를 들어서 한다고 하여도

성령님이 역사하는 설교가 아니라면 지식과 정보를 주는 그리고 사람들의 귀나 즐겁게 하는

연설이나 강의나 사업 설명회에 불가한 것입니다.

 

저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목사가 말 잘하면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입니다.

 

목사는 말 잘 하면 안 됩니다.

목사는 성경에 근거해서 설교 즉 하나님에 말씀을 바르고 정확하게 전해야 한다고...

 

그렇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선포되는 설교만이 사람들의 마음을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사도행전 2:14~41절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듣는 여러분들도 목사님의 말이라고 해서 아무 말에나 아-멘 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어지는 말씀에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는 분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분별하다의 헬라어는“도키마조”입니다.

이 말의 뜻은 입증하다, 시험하다, 인정하다. 라는 뜻을 가졌습니다.

 

즉, 하나님의 뜻을 분별 한다는 말은 우리가 말씀을 판단하거나 시험한다는 의미보다는

하나님의 뜻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악으로부터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시는가를 정확히 알아야하며, 마음을 지속적으로 새롭게 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라고 바울은 권면 하고 있습니다.

 

빌 2:12절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에 뿐만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라고

 

그리고 엡 5:8~10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 인가

시험하여 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때가 몹시 어둡고 악한 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우리는 세상의 빛인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사도 바울은 본문 끝 부분에서 단호히 권면하고 있습니다.

“분별 하도록 하라”라고 말입니다.

 

똥을 된장으로 알고 살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의 주변에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다고 하는 사람들도 분별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있습니다.

 

오늘 예배드리시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분별력 있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이제 결론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으며,

하나님께로부터 하나님의 생령을 부음 받은 살아 있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이 살아있는 영적 존재들은 예배를 통하여 사랑의 하나님과 교제를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살게 지음 받았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만든 거짓 우상들을 섬기며,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살아가는 존재들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원수들이 돌아 올수 있는 길을 마련하여 놓으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하나님께로 나오는 통로입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요한복음 14:6절입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오늘 이 예배에 참여하신 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의 길로 나오신 분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산제사를 통한 예배입니다.

 

이 산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죄로부터 구원 받은 사람들이 드리는 영적 예배입니다.

이 산제사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회복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사람들이 드리는 예배입니다.

이 산제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인해 오신 성령님의 역사로 희생이 있는 예배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성령님의 역사로 이러한 예배가 있기를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원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