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은 우리에게 계속해서 소금을 뿌리신다.
제목이 갑자기 무슨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금을 뿌린다는 어색한 말인가. ㅎㅎ
십여 년 전에 새벽기도 때 묵상하면서 왜 나는 이렇게 고난이 많을까
다른 사람들은 뭐 그냥그냥 평범하게 사는 듯 보였는데 왜 나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고난이 많은가를 생각하면서 서러운 가슴을 부여잡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속이 꽉 찬 싱싱한 배추 한 포기가 보이고 그 위에 누군가 소금을 왕창 뿌리는데
어느 순간 그 싱싱하고 부러질듯한 배춧잎이 갑자기 야들야들해지면서 배춧속
에 수분이 쭉 빠지고 푹 눌러져서 용량이 확 줄어 보이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게 뭐지? 뭔 밑도 끝도 없이 뭔 소금에 절인 배추?
약 2주 후에 장모님이 오셔서 약 20포기 미리 산 배추를 다듬으면서 욕조를
깨끗하게 씻은 후 거기에 반으로 자른 배추들을 깔고 소금을 쫙쫙 뿌리더니
그위에 또 2단으로 올리고 또 소금을 배추 사이사이에 쫙쫙 뿌리시더니
하룻밤만 지새면 김장김치를 만들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침에 세수하러 욕실에 들어가니 그 많아 보이던 배추가 소금의 영향으로
수분이 쭉 빠지고 순이 야들야들 변하여 용적이 확 준 것을 보았습니다.
새벽기도 때 본 것과 아주 똑같았습니다.
세수는 안 하고 밋밋한 표정으로 소금에 절인 배추를 바라보는데 그 배추가
나 자신으로 느껴지고 소금은 연단 내지는 고난 그리고 소금을 뿌린 손길은
주님의 손으로 다가왔습니다.
뻣뻣한 배추 그 자체로는 별로 의미가 없지만 소금에 절인 배추라면 겨울
동안 내내 먹을 일용할 양식인 김장김치로 탄생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배추같이 뻣뻣한 나를 고난이라는 소금을 확 뿌려서
야들야들하게 만들려고 그러셨나?
뭐 그렇다면 좋은 일 아니던가..나름대로 좋은 쪽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제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주님 앞에 나와 진심으로 순종하고 좁은 길을 가는
사람들에게 공통으로 보인 모습들이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엄청난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주님께 굴복하고 주님의 품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이들도 누구처럼 소금 뿌림을 어지간히 당한 사람들로 보여서 남의 일 같지
않아 동질감을 많이 느끼곤 했는데 신기한 것은 그 고난이 아직까지 적절하게
계속된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변치 않는 신앙심을 위해서 순이 살아날려고 하면 바로바로 소금을
뿌려서 어느 정도의 가시를 빼지 않고 그대로 놔둔 듯 보였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대부분 사람들이 기도만 열심히 하면 그 고난의 시간이 갑자기 물러가고
내가 원하는 자기만의 파라다이스를 꿈꾸는 상상을 하나 봅니다.
그러나 역시 저도 그랬지만 주님의 방법은 우리와는 다른 듯 보입니다.
출애굽 하여 홍해만 건너면 다 끝난 게 아니란 것입니다.
유대민족이 홍해를 건넜을 때 모든 고난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열흘에서 보름이면 통과할 광야를 40년이나 뺑뺑이 돌리는
주님이십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순이 죽지 않은 배추는 김치를 담그지 못하듯 유대민족의 뻣뻣한 순을 광야라는
소금을 이용해서 꼬꾸라지게 한 다음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살만한 자격을 갖춘
백성으로 만들기 위한 작업입니다.
그렇게 40년을 소금 뿌림을 당하여도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광야 1세대 중
여호수아와 갈렙 외에는 없었습니다.
광야만 통과했다고 다 끝난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광야를 통과하니 요단강이 두 손 벌려 환영했고 요단강을 건너니 여리고성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순전히 주님의 능력으로 여리고성을 통과하니 이번에는 아미성이 군침을 흘리면서
환영파티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가도 가도 끊임없이 계속해서 세상과 싸워야 했고 정착한 이들은
또 이방적들의 침략에 고난이 끈임없이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유대민족이 애굽만 탈출하면 모든 게 해결될 것이라고 착각하듯이
교회만 다니면 나의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구원은 당연히 받는 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애굽에서 탈출한 유대민족이 계속해서 소금침을 당했듯 우리의 고난도
쉽게 끝나지 않습니다.
아니 예수님을 믿은 다음부터 그 고난은 더욱 부채질을합니다.
주님의 말씀대로 복음의 삶을 살면 당연하게 어쩔 수 없이 고난은 찾아옵니다.
오히려 고난이 없는 게 더 이상할 정도입니다.
예수님을 믿었는데 고난이 없었다면 자신의 신앙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분명히 예수님도 너희가 나를 믿으면 고난이 따른다고 하셨습니다.
말씀대로 됩니다.
예전에는 이런 고난을 매우 불쾌해 하면서 왜 나에게 왜 나만....
그러나 주님의 섭리임을 알고 오히려 그게 더 감사했고 고난이 나에게 유익임을
알았습니다. 이런 고난이 계속되어도 상관 없습니다.
주님 앞에 서는 날까지 계속 되겠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이 어려운 달려갈 길을 끝낸 후에 주님 품 안에 안기면 모든 것을 보상받기
때문입니다. 그것만을 바라보면서 사는 게 저에게 큰 낙입니다.
제게 가장 큰 복은 이 세상의 부귀영화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오늘이라도 내가 죽으면 다 무용지물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 예수님을 믿고 그분이 요구하시는 좁은 길을 가면서 천국에서
주님을 뵈올 상상만 하면 왜 그렇게 힘이 넘치는지...
이것이 제게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큰 복입니다.
지옥 갈 영혼이 주님을 알므로 인해서 천국 백성으로 바뀌었다면 보화도
이런 보화가 없습니다.
물론 저의 이 꿈은 주님이 원하시듯 달려갈 길을 다 끝낸 후가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만 다니면서 주여주여 만 외치면 다 해결 되는 줄 압니다.
천국이 그렇게 쉬운 곳이라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성육신 하셔서 오실 이유도
없었습니다.
우리에게 고난이 많다고 원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더 기뻐하고 즐거워 하십시오.
주님이 우리를 위해 고난이라는 소금을 이용해서 계속 뿌리심을 더 즐거워하고
감사하십시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디모데후서 4장 7절~8절)
주님! 저희 구원을 위해 고난이라는 기회를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것이 우리에 대한 주님의 사랑임을 압니다. 감사합니다.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사람들 - 랑별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