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사람의 시한폭탄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사람이 있는데 각자 시한폭탄을 들고 있는 것입니다.
근데 문제는 자기 본인은 시한폭탄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데 상대방의
품에 있는 시한폭탄은 기가 막히게 잘 본다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이 글을 읽는 분들은 어찌 생각하시나요?
책칵 책칵 시간은 흘러가는데 상대에게 시한폭탄을 버리라고 고함을 지릅니다.
당신이 가진 시한폭탄 때문에 내가 죽을 판이다.
그러니 빨리 버려라! 역시 상대의 사람도 똑같은 소리로 받아칩니다.
서로 상대의 시한폭탄에 집중하며 버리라고 고함은 지르는데 막상 자신에게
있는 시한폭탄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는 부부싸움이나 친구사이 또는 교회의 지체 간에 많이 나타나는
현상인데, 교회는 다닌다 하면서도 삶에 적용되는 행하는 신앙은 없고,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면서 눈물도 흘리고 하는데 언행이 도무지 이해
안 갈 때가 참으로 많음을 발견하는데 이런 분들이 시한폭탄을 늘 소유하고
다니는 분들입니다.
제 경우를 말씀 드리자면(이 글을 집의 높으신 분이 보면 안 되는데 걱정입니다)
가정의 이런저런 일로 신혼 초부터 시작해서 다툼이 좀 있었습니다.
물론 살아온 삶의 환경이 달라서 서로의 잣대를 맞추어 가는 과정이라서
그럴 수 있다고는 하지만 서로의 주장이 강했던지라 욕만 안 했지 말다툼이
은근히 벌어지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면서 상대의 시한폭탄만 빨리 버리라고 했지
내 시한폭탄은 버릴 생각이 추호도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나는 교회의 어지간한 예배는 거의 다 참석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자면서도 어찌나 웃음이 나오는지 교회생활은 열심인데
마음의 심보는 전혀 바뀌지 않고 종교생활로 구원받으려는 비겁하고
얄팍한 심리에 씁쓸하곤 했습니다.
교회를 가도 늘 듣는 설교는 우리의 영의 변화보다 육의 변화와 육의 축복만을
질리도록 들어서 그런지 내적 변화는 거의 없었던 걸 스스로 알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이래선 안 되겠다는 각성이 속에서부터 꿈틀대면서 성경을 제대로
읽기 시작하고, 영의 각성을 촉구하는 훌륭한 목사님들의 설교를 유튜브로 듣기
시작하면서 나 스스로 조금씩 변화하는 걸 느끼게 되었고 결정적으로 대형교회를
떠나 지금의 교회로 정착하게 되면서부터 더더욱 내 시한폭탄을 없애는 작업이
혹독하게 진행되었습니다.
한편으로 내가 사회의 기본이 되는 가정에서조차 예배된 삶을 살지 못하는데
사회에서 무슨 큰일을 하겠다고....제 자신을 질책하며 집에서 마치 나의 일인 양
(이제는 확실히 내일이 되었음) 설거지, 빨래, 애들 공부 가르치기, 청소, 걸레질,,,
이런 잡스러운 모든 집안일을 당연히 제가 해야 한다고 자연스럽게 자동화
기계처럼 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설거지 몇 번 하고 뭔 대단한 일이라도 한 듯 어깨에 힘주고 눈에 레이저가
나갈듯한 눈빛으로 안구에 각 잡고 마치 큰일을 도와준 듯 허세를 떨던 시절도
있었는데 그 내적 자아가 내 영을 죽이는 시한폭탄인 것을 알고부터 바싹 엎드려서
그런 집안일들을 당연한 나의 일들로 만들어 버리니 사회에서 동료들을 위해
일일이 커피도 뽑아주고 하던 모습이 가식이 아닌 진심이 되는 내적 변화가
많이 왔습니다.
전에는 한분 한분 커피를 뽑아주면서도 집에서는 안 하면서 내가 지금 뭐하는
짓인가.. 이거 회칠한 무덤 같은 경우 아닌가 하면서 돌아서면 늘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가정에서부터 변하니까 사회에서도 떳떳하게 회칠한 무덤이 아니게
되더군요.
그런 모습을 보이자 집의 높으신 분이 변해도 많이 변했다
하면서 "내가 당신을 변화시키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저는 주님과 집사람 앞에서 절대 앞으로 다툼은 없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지금까지 살고 있는데 확실히 내가 변해서 그런지 집이 평화롭고 웃음소리가
많이 나고 아이들이 매우 행복해하는 모습을 늘 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청소를 하면서 농담으로 웃으며 당신은 잘 하지 않으며
입으로만 시키는 사람이라고 한마디 툭 던졌는데 갑자기 부들부들하며 전운이
감돌고 기분 나쁘다고 시한폭탄이 터지려고 할 때
"여보(부드러운 늬앙스로) 교회만 가서 눈물 흘리며 말씀을 아무리 많이 들으면
뭐 하시나 그게 삶에 적용이 되어야지, 당신은 나만 변하면 될 것으로 생각하여
안심하고 지냈지만 당신은 조금도 변하지 않고 나만 변하길 바라고 신앙생활
하는 것 같은데 당신도 변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언제라도 자신의 시한폭탄이
터질 수 있어요"
"믿는 자라 하면서 믿지 않는 자와 동일하게 같이 화내고 자아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도데체 믿는 것과 안믿는 것의 차이가 뭐지요?
믿지않는 자들은 주님을 모르니 그 품행에 일관성이라도 있지 우리같이
믿는 자들이 그들과 같은 품행을 유지하면 그건 위선 아닌가요?"
나의 변화 없이 상대방의 변화만으로도 그 평화는 유지됩니다.
상대의 변화로 아무 일 없으니 자신에게는 별문제가 없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건 큰 착각입니다.
자신의 눈에는 상대가 시한폭탄(자아)을 버렸으니 문제가 다 해결 된 듯 보이지만
여전히 자기 자신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늘 가슴에 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의 시한폭탄마저 버리지 않으면 진정한 평화는 아닙니다.
집사람에게 이런 말들을 하니 이해가 된 듯 자존심을 억누르고 예전과 다르게
분노를 억제하면서 몇 분 후에 웃는 얼굴로 변하더군요.
분위기를 확인하고 가만히 다가가서
"열심히 말씀을 보고 듣는다고 주님께 인정받는 것이 아니고 말씀을 듣고
본대로 삶에 적용하는 사람이 주님께 인정받는 것입니다." 라고 부드럽게 말하니
저에게 눈을 한번 흘기는 것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여러 카페를 서핑하다 보면 누가 글을 올리고 누가 반박하는 댓글을 달면
댓글로 다시 반박하고 댓글로 처음에는 점잖게 거룩한 듯 품위 있는 논쟁 하다가
자신의 주장이 인정받지 못하면 결국 시한폭탄이 터져서 신앙인인가 의심이 들
정도로 큰 다툼이 일어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 이런 분들은 자신에게 스스로
정말 조심해야 합니다.
목사라고 프로필에 나온 사람들조차도 입에 담지 못할 상스러운 표현을 해 가면서
댓글 다툼을 하는 걸 종종 봅니다. 이런 분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자신은 엄청난 시한폭탄을 지니고 있으면서 상대에게
"네가 품은 시한폭탄 좀 봐라, 네가 상식적인 사람이냐?" 라고 하는데 분명히
말하지만 이런 분들은 가정에서조차 문제가 있고 믿음생활에도 보이지 않는
하자가 있는 분들입니다.
내 안의 자아를 죽인 사람들은 상대가 아무리 자극해도 이에 격분하여 달려들지
않고 그냥 옅은 미소를 흘리면서 뒤로 물러나게 되어있고 주님도 기뻐하시는
사람입니다. 내 의를 인정해 주지 않으면 어떻습니까.
우선 거울을 보고 내 모습을 확인하세요,
그리고 자신의 시한폭탄을 찾아보세요. 분명히 있습니다.
상대가 인내함으로 그냥 잘 넘어간다고 안심하지 마십시오.
상대방의 인내로 평화가 찾아올 때 인내하지 않는 당신의 머리 위에서는 뜨거운
슻불이 계속 타들어갑니다.
그 숯불이 계속 타고 있는 한 당신에게 거듭남의 흉내는 있어도 진정한 거듭남
이란 없습니다.
거듭남의 시작은 우리가 가슴에 품은 시한폭탄(강한 자아,죄성)을 보는 것으로
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모든 죄의 시작은 헛된 나의 자아를 지키고 진행하려는 욕심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이 거듭남의 첫걸음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애통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진심으로 찾게되고 주님과의
인격적인 만남 즉,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또, "당신이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시는 것이다.
당신 노력으로는 아무 것도 못한다"...이 말씀 하고 싶은 분들은 노를 품지
마십시오. 이 모든 변화는 성령님이 오시고 나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내 안에서 인도하시니 순종하는 것입니다.)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마 7:4)
(랑별파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