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 수훈 중에 팔복(八福)은 믿는 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 또한 적습니다. 

 

이것을 먼저 이해하기 전에

믿는 사람이 두 종류라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는 신령한 자요 다른 하나는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에 의해서 나의 온 존재가 다스림을 받는 사람입니다.

신령한 사람은 성령에 의해서 다스려지므로,

언제나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것이 무엇인지

기도해야 합니다.

 

신령한 자는 성령을 모르고서 있을 수 없습니다.

성령의 소욕은 육신의 소욕을 거스리고,

육신의 소욕은 성령의 소욕을 거스리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을 알아야 예수님의 말씀이 이해 되고

믿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님 곧 진리의 영이 오셔야

자유케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성령의 역사를 알아야 제대로 이해가 되며,

성령의 역사를 모를 때는 도덕이나 윤리 차원의 말씀이 되어 버립니다.

 

믿는 이가 성령의 역사를 가로 막는 것은 다름 아닌  입니다.

나는 영과 혼과 육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영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

대개 느끼지 못하고 살아갑니다.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영이 존재하며,

성령은 내 영 안에 거하시고,

영을 통해서 역사하신 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반면 혼과 육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가 아닙니다.

혼은 나의 생각 감정 의지 곧 지금 살아가는 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혼과 육은 하나님께로서 난 것이 아닙니다.

혼과 육은 하나님께로서 나지 아니하였으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한다는 것입니다.

 

대개 생각하고 느끼고 뜻을 두는 것은 혼에 있습니다.

 

내가 믿을 때에 성령님은 내 영 안에 거하시는데,

작용을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혼과 육적인 내가 살아서

자기의 뜻대로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시게 하려면 혼적이고 육적인 나를

죽여야만 합니다.

그것은 십자가에서 죽이는 것입니다.

 

믿는 자에게 있어서 성령의 역사와 십자가는 함께 역사합니다.

십자가의 역사가 없는 성령의 역사는 없습니다.

 

나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 놓지 않는다면 내 자아(혼과 육) 때문에

성령님께서 활동하지 않는 것을 안다면

내 생각 감정 의지를 가지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큰 무지요,

어리석음인지 알게 됩니다.

 

십가가에서 나를 죽인다는 것은 

혼적인 나 곧 내가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고 뜻을 두는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악하다는 것을 알고,

이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직 성령님께서 역사하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나의 이러한 자아가 깨어지면 성령님은 곧 바로 역사하십니다.

성령님께서 나의 혼과 육을 지배하시고, 다스리시는 것

이것을 성령 충만이라고 합니다.

 

1. 심령(spirit :  영) 이 가난한 자

 

가난하다는 것은 극빈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결핍상태, 이를 다시 말하면 하나님만 필요로 하는 상태,

하나님이 아니고서는 채워지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를 채울 수 있으며,

세상 어떤 것으로도 영을 채울 수 없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

 

2. 애통하는 자.

 

애통하는 자는 도울 자가 없으므로 심하게 울부짖는 것을 말합니다.

나의 죄에 대하여 이세상에서는 도울 자가 없고,

오직 하나님 만이 도우실 수 있으므로 애통해 하는 것입니다.

불쌍한 심령들을 위해서 내 힘이 없어서 우는 모습이요,

나의 의가 없어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이므로 애통해 하는

사람입니다.

 

3.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의는 하나님께서 죄를 처리하시는 하나님만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또한 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은 죄 값을 반드시 물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모순이 생깁니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죄 값을 반드시 물으신다면

사랑의 하나님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죄를 처리 하셨습니다.

곧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서

그를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심으로

사랑의 하나님이 되셨고,

의도 나타 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되십니다.

 

나의 의는 아무 소용도 없고 하나님을 만족케도 못하지만

오직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의를 이루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의 공통점을 아실 것입니다.

나는 아무 능력도 없고, 힘도 없고, 의도 없어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이 없어 애통해 하고,

하나님 의만 나타나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인간의 다른 방법이나 힘이 있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

 

곧 하나님 앞에 항복한 사람입니다.

이렇게 철저히 자신이 부서진 믿는 사람 속에서

성령 하나님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내 속에 거하신 성령님께서 활동하시고,

내 모습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이 드러나는 것이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 하나님이 일하시면 자연히 하나님의 성품이 나오게 되어있습니다.

성령님은 어느 때가 되어야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역사를 가로막는 나의 자아를 십자가에 내어 놓으면

즉시 역사하십니다.

 

 

4. 온유한 자

 

온유는 모습과 행동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5. 긍휼한 자

 

긍휼은 사랑을 주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마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6. 마음(soul : 혼)이 청결한 자

 

마음이 청결함은 영 안에 거하신 성령님이

부서지고 항복하여 깨어진 내 속에 넘쳐 나와서

혼을 적시므로 생각하는 것이 성령님과 같고,

말하는 것이 성령님과 같게 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 세가지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7. 화평케 하는 자

 

화평 곧 평안은 주님으로 얻은 두려움과 염려가 없는 상태입니다.

사람은 내일 일을 염려합니다.

오늘 좋다가도 뒤 돌아서면 내일 어찌 될까 하고 염려 걱정합니다.

모두 육신 곧 자기 자아에서 나온 것들이기 때문에

환경이 달라지고 생각이 달라지므로 평안하다가도 불안해 하는 것입니다.

자아는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평안은 환경과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습니다.

 

8.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

 

예수님을 보시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위해서

핍박과 멸시와 천대를 받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우리의 의가 되셨듯이,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의를 위해

하나님께 드려져서 쓰임 받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핍박을 받고 멸시와 천대 받도록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입니다.

 

위의 두 가지는 성령으로 충만한 자가 사람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서 전적으로 쓰임 받는 사역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드려지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는

곧 성령 충만하여 하나님 없는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아님을 아는 사람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위로를 받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배부를 것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는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컫습니다.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는 자는 천국이 저희 것입니다.

 

오늘 이러한 열매가 없다면 분명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가로막는 내가 있음을 알고

기도하여 찾아 십자가 앞에 내어 놓고 항복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성령님께서 즉시 역사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내 안의 내가 드러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내 안에 거하신 하나님이 드러나시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드러나려고 할 때 하나님은 드러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드러나실 때,

부셔진 여러분이 될 때,

십자가에서 나의 못난 자아가 완전히 항복할 때,

비로소 팔복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

 

위의 것들은 내 스스로 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알았습니다.

내가 하려고 해서도 안되며,

한다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성령님께 내 자신을 맡딜 때 자연히 나에게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하나님만 바라고,

하나님이 내 안에서 드러나고,

하나님을 위해 쓰임받도록 나를 드리는 자가 복된 것입니다.

 

이 복이 참된 복이니 성령님 의지하고 성령님께서 주시는

8복을 누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