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인에게 왜 환난이 닥치고 고통이 오는가?
대다수의 율법적인 관념 속에 있는 신자들은
고난을 당하는 형제들에게 속단을 내립니다.
"저가 무슨 범죄를 하였느니깐 일이 잘 안 풀리겠지...."
하지만 신약에 나타난 은혜의 복음은 그렇게 해석하지 아니합니다.
가장 큰 고난 길을 걸으신 분은 믿음의 창시자(히12:12)이신 우리 주 예수이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 크나큰 고난길을 걸으신 분을 꼽으라면 사도바울입니다.
그는 고백합니다.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이외에 일은 고사하고 오히려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것이 있으니....."
(고후11:27-28)
그렇지만 그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핍박을 받고....꺼꾸러뜨림을 당하고...." 라고 하면서 그렇다할지라도
낙심치 아니합니다. 고난에 순응하는 자신의 입장을 표명합니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함이라.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느니라.(고후4:8-12)
우린 몇 마디의 바울의 말에서 고난에 대한 해석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는 스스로 고난을 받아들이고 있으며 그 고난의 이유를 알기에 낙심치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 고난의 이유는 '예수를 위하여' 사는 삶입니다.
삶에 닥치는 환난들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것이 모두 예수를 위하여 사는 것이랍니다.
언뜻 이해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왜 매일 환난을 당해도 피하여 가려 하지 않고 순응하며 감사하게 되는가?
왜 항상 압박과 눌림과 삶의 고통을 제거해 달라고 주께 기도하지 않는가?
그는 단지 인내로써 견디고 있을 뿐입니다.
아마도 배고픔이나 주림이 지나가면 맹수의 위험이나 반대자들의 적개심이
목숨의 위험으로 다가 올지도 모릅니다.
쉬지 않고 답답한 일을 당하고 우겨쌈을 당합니다.
사방에 우겨쌈으로 절망 속에 갇힐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당한 환경을 감사하며 순응하며 나아갑니다.
고난이 심한 적엔 한 템포를 늦출 수도 있건만.....
그는 그러한 방식을 취하지 아니합니다.
만약 오늘날의 목회자들과 대비한다면 그는 이미 여러 교회를 개척하였고
그 교회들이 성장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아직도 배고픔과 헐벗음과 위험을 감수하는 길을 계속 걷습니다.
바울은 그러한 삶이 예수를 위하여 사는 삶이란 것을 표본으로 드러내었습니다.
바울은 그러나 고난의 일생을 살아가면서도 고난을 감사히 받아들이는 것에는
두가지 이유를 피력합니다.
첫째는 "이는 능력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두번째는 "예수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한 삶이라는 것입니다.
세번째는 "죽음은 우리 안에 역사하나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기 위함입니다."
그는 항상 하나님을 신뢰하는 맘이 변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환경에서 건지실 것입니다.
그는 예수를 위하여 살기로 작심한 사람이기에 예수를 따르는 삶이란
고난길임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예수 믿는 것이 세상에서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의 길이란 고난길을 같이 걷는 것입니다.
주께서 좁은 길을 걸으라 협착하여 찿는자가 적음이니라...하셨을 때
그 협착이란 원어성경에 사방으로 우겨쌈과 같은 단어입니다.
헬라어 '들립시스" 는 압박,고뇌,핍박,환난,고통으로 쓰여집니다.
신약성경에 사용된 용례를 보면,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그 길이 협착하여 찿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4)
"환난 당한 자들"(딤전5:10)
"환난 받는 너희"(살후1:7)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고후4:8)
"사방으로 환난을 당하여 밖으로는 싸움이요, 안으로는 두려움에 있었노라"
(고후7:5)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이 인내를...."(롬5:3)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롬12:12)
"너희가 내 괴로움에 참여하였으니"(빌4:4)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으니"(살전1:6)
"나 요한은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계1:9)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루려 함이니" (고후4:17)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지니라"(행14:22)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막4:17)
성도에게 환난이 오는 것은 영적인 전쟁을 치르게 하심입니다.
주를 신뢰함으로 승리를 얻게 하십니다.통과하게 하십니다.
불같이 오는 시험을 겁낼 필요는 없습니다.
주를 신뢰한다면 통과하게 하실테니까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탐을 다녀온 후 믿음이 없는 신자들은 인생최대의
위기라고 생각하고서 낙담하고 불평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다시 광야길로 돌이켜 되돌아 가게 하셨습니다.
그리곤 그들을 싸움을 보면 겁내는 이들...믿음이 없는 자들로 간주하시고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시간을 미루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따라 나왔으나 환난이 닥치는 것을 순응하지 않는 신자...
고난 길을 좋아하지 않는 신자는 천국에서 영광스런 길로 인도하시지 않습니다.
예수따라 가는 길은 협착한 길입니다.
고난 길입니다...항상 환난이 닥치는 길입니다.
만약 세상종교를 믿는 것처럼 복주시는 하나님으로 상상하면서 예수제자의 길을
나선 분이 계시다면 잘못 선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의 가신 길은 고난과 압박의 연속이며 환난의 연속입니다.
바울의 간증에 주목하십시오....그는 "항상" 언제나 예수에게 준 그 고난이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연속된 환난과 압력을 주의 능력으로 통과하게 하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진 자만이 이 길을 걸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엔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뢰하는 사람으로 만드실 것입니다..
이런 성품의 소유자들은 환난이 임할 때마다 인내로써 기도하며 통과하게
되심으로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가능하다는 것을 체현화되게 하십니다.
더 나아가 "죽음은 우리 안에 역사하나 생명은 너희 안에 역사하게 한다."..
이 대목을 더 깊이 묵상해 보기 원합니다.
많은 목양자들이 환난 당한 성도에게 심방하기도 하고 위로의 말을 전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 메시지가 큰 위안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외 아들의 죽음을 맞이한 이에게 정말 위로가 되는 말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기도 아들의 죽음을 경험해 본 사람의 간증입니다.
사별의 아픔,,,이혼의 고통,,,,그러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 진실로 위로가 되는 말은
무엇일까요?
같은 아픔을 견뎌낸 사람의 간증입니다.
빚투성이가 되어 자살직면에 이른 사람에게 정말 위로가 되는 사람의 말은
자기도 그런 환경을 겪어본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통과하게 하셨는가를
간증하게 될 때 가장 큰 위로가 될 것입니다.
고통은 고통을 당해 본 사람만이 그 고통의 강도에 대해서 압니다.
체험하지 아니한 진리를 전하는 것은 모두 허공을 맴돌게 할 뿐입니다.
죄에서 깊은 심연의 고통을 겪다가 예수의 피를 경험한 사람은 그 진리를
잘 증거합니다.,,요한 웨슬레같은 사람입니다...존번얀같은 사람입니다....
'나같은 죄인'이란 찬송가를 쓴 뉴톤 같은 사람은 죄로 말미암아 고통 중에
있는 자들에게 가장 예수 속죄의 복음을 공감하게 하는 설교를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크게 사용하셨습니다...
인생사에서 겪는 거의 모든 고통을 손수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그를 큰 그릇으로 만드셨습니다...
질그릇같은 육체....깨어질 것 같고 부서질 것 같은 육신을 입었으나 보배로운
예수를 담은 그릇입니다...곧 넘어지고 실족할 것 같으나 그는 쓰러지지
아니합니다...연약해 보이는 그 육신의 그릇에 보배로운 예수를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홍해를 건널 때에 가장 먼저 무서워보이는 그 바다,아직도
갈라지지 아니한 바다,,,,그 바다에 향해 발을 담그고 전진하게 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궤를 맨 제사장 그룹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주님의 양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사람은 먼저 체휼한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장성한 자들이 연약한 자들 앞에서 본보이기 원하십니다.
존 번연을 상상 해 보십시오,그는 주로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생명력을 공급하는 글인 "천로역정"이란 걸작이 나왔습니다.
중국의 윗치만니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생명의 해방,,,십자가의 해방을 진리를 썼습니다.
우찌무라간죠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고뇌,,,그의 고통으로 통하여 심금을 울리는 메시지를 증거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모든 성도들을 목양할 수 있으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인생사 모든 고통을 체휼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예수를 죽인 흔적을 지녔노라!"
예수 그리스도도 그러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히4:15)
환난 중에 있는 성도가 계십니까?
감사하십시오....주님의 나라에서 큰 사람이 되게 하시려고 허락하신 환경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성도가 있습니까?
즐거워 하십시오...하나님의 기적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생환난을 비켜 갈려고 하는 성도가 있습니까?
그 대는 영광스런 생명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하는 상속은 받지 못할 것입니다.
능히 환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간증의 소유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오는 환난들을 감사히 순응하며 천국가는 길을 함께 걸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