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 이레 삶의 모든 순간에 예비하신 즐거움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 드리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수풀 속에 수양을 준비하셔서 이삭 대신에 양으로 번제를 드리게 하셨다. 어릴 때에는 친구들과 골목에서 노는 것이 제일 즐겁고, 중학교 때에는 만화보고 영화 보는 것이 즐거웠고, 대학 다닐 때는 연애하는 일이 즐겁고, 또 결혼해서는 아이 낳고 기르는 재미로 살았고, 사업에서는 일을 성취하는 기쁨에 살았다. 4,50대가 되어서는 재산이 조금씩 증식되고 안정되어 가는 흐뭇함 속에 살았고, 더 나이가 들어가면서 지혜와 명철이 더 맑아져서 신을 바라보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다. 어린이는 어른의 삶을 모르지만 어른은 지난시절의 삶을 안다. 장년은 노년의 즐거움을 모르지만 노년은 지난 세월의 삶을 안다. 하나님은 모든 세월 속에 그 때에 알맞은 즐거움을 예비하신다. 그 때가 되기 전에는 모르지만 그 때가 되면 새로운 예비하심이 등장하는 것이다. 이 즐거움이 지나면 다음에는 무슨 재미가 있기나 할까? 가 아니라 모든 때에 맞춰 최고의 즐거움을 주신다. 이것이 예비하심이고 ‘여호와 이레’이다. 영어로는 providence이다. 혹자는 나이가 들어 기력이 쇠하고 신체가 노화되는 것에 대하여 슬퍼하고, 억지로 무슨 약을 먹어서라도 젊음을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지혜롭지 못하다. 젊은 건강이 오래도록 유지되는 것은 좋기야 하지만 그리 되지 않는 것이 섭리(신의 이치)이고 자연의 이치이다. 나이가 많이 들어 성욕과 성력이 떨어지는 것은 매우 자연스런 현상이고, 그것은 ‘인생 끝났구나.’ 하는 절망의 신호가 아니라, ‘이제 그만큼 해두고 때에 맞는 다른 것을 즐기라’는 또 하나의 시작의 신호이다. 나이가 들면 지혜가 눈을 떠 신, 곧 하나님과 만나는 방법을 알게 된다. 신과 합일하여 하나가 될 때, 젊은 시절에는 알지 못했던 무한한 행복과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죽음의 때가 되면 또 다른 즐거움이 기다리고 있다. ‘이제, 영으로 깨달았던 하나님의 실재(實在)를 실존의 상봉으로 이루어지는’ 영원의 소망이 있는 것이다. 신과 하나가 되려면 먼저 신을 만나야 할 터인데 도대체 신은 어디에 계시는 것인가? 우선 신은 밖에는 계시지 않는다. 강대상 뒤에도 없고 하늘꼭대기에도 없다. 아무리 망원경으로 현미경으로, 대소 막론하고 살펴보아도 밖에는 계시지 않는다. 밖이 아니면 어디겠는가?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17:21), 하나님은 영이시니(God is a Spirit)(요 4:24)’ 우리 안에 가장 깊은 곳, 영(靈)에 있다.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는데(합 2:20) 그 성전이 건물 성전(요 2:20)이 아니라, 성전인 우리 몸(요 2:21)을 말한다. 영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려면 간단히 열쇠로 열고 들어가서 만나지는 게 아니다. 보물섬에 있는 보물창고에 가려면 도중에 험난한 계곡과 언덕과 강들을 지나서 모든 것을 물리치고 어렵게 도달하여 또 암호로 된 자물쇠를 풀어야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영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려 해도 이와 같이 모든 수고를 다한 후에야 들어갈 수 있다. 하나님(말씀, 성경)은 비유로 되어 있다. ‘누룩’이 떡에 넣어 부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교훈’을 말하며, 강도만난 자를 싸매어준 ‘포도주와 기름’이, 열 처녀의 비유에서의 ‘등잔과 기름’이 ‘진리와 성령’을 말하며, ‘남자와 아내’가 성별이 아니라 ‘지성과 사랑’을 말하며, ‘떡과 잔’이 ‘살과 피’를, 살과 피가 ‘말씀과 그 속의 뜻’을 의미하는 것 등의 비유를 깨달을 때 영의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되려면 영을 비워두어야 한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 2), 그 속에 다른 것이 가득 차 있으면 하나님이 들어가실 수가 없다. 들어가고 싶으시지만 ‘여보게, 청소 좀 하지, 네 것이 너무 많구나.’하신다. 네 것이란 자기생각, 세상교훈, 사람들의 유전(遺傳) 같은 것을 일컫는다. 하나님이 들어오실 수 있게 자기 것을 내려놓아야 한다. 이것이 어렵다. 보물창고를 찾아 가시밭길을 헤치고 가는 것이 바로 이 내려놓기이며, 성경적으로는 세례(자아의 죽음)이다. 젊어서도 지혜와 명철이 뛰어나서 신을 만나는 사람도 있지만, 대개는 다른 즐거움(즐거움은 고통을 동반한다), 친구사귀기, 술 마시고 방탕함, 자녀 키우기, 사업에서의 열정 등의 소욕이 더 커서 지혜의 발동이 잘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다 겪은 후에 나이 들어 신체적으로 후퇴하고 힘을 빠지게 하시면서 준비하신 즐거움 신을 만나는 즐거움을 주시는 것이다. 이 즐거움을 맛보는데 걸림이 되는 것이 있는데, 첫째는 지나간 즐거움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이다. 이제 그만 할 때가 되었다고 신호를 보내었는데도 계속 붙들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두 번째 걸림은 말씀(하나님) 속에 깊이 들어가지 않고 자꾸 자기생각, 지난날에 배운 세상지식을 고집하는 것이다. 이것이 참 어렵다. 그러나 간단히 만사 다 잊고 말씀 속에 빠져 들어가면 다행히 예수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좋은 점이다. 그리스도는 가장 좋은 스승이시며, 우리가 좇아 가야할 믿음의 표상이다. 2009년 1월 7일, 라디오프로 ‘양희은 강석우의 여성시대’에서 “내 인생에 가장 행복했던 나이는?” 이라는 설문을 인터넷으로 띄웠는데 놀랍게도 그에 대한 응답이 ‘일곱 살 때’라는 응답부터 ‘일흔 살 때’라는 응답까지 아주 골고루 올라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어느 나이 없이 전 인생에 걸쳐서 행복은 때마다 깔려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공급하시는 예비의 하나님, ‘여호와 이레’가 아니신가. 부디, 노년이 되어서 지난시절 그리워하며 애(용) 쓰지 말고 그 나이에 알맞게 예비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도록 안(靈)에 계신 하나님을 만나도록 그 앞에 나아가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