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시간을 알려주는 자명종 시계!


우리 주위를 보면 항상 다른 사람들에게

조언하기를 즐겨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항상 옳고 그름을 따지기 좋아하고

자신의 주장이 옳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물러서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대부분 옳은 내용이고,

그들의 도덕성은 매우 높은 편이며,

성경에 대하여도 박식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조금씩 세상을 살아가면서 관찰해 보니

옳고 그름을 따져서 사람을 감옥에 보낼 수는 있어도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행위가 의로웠던 사람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은 성경의 율법에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세리와 창녀를 보면서 항상 손가락질했습니다.

이들은 자신은 의롭지만 세리와 창기는 율법에 따라

죽을 수 밖에 없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자신이 그들과 같지 않음을 감사하던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들이 생각한

자신의 상태와는 전혀 다른 평가를 하셨습니다.

 

심령을 감찰하시는 예수님은 이들을 보고

겉에서 보기에는 깨끗한 것 같지만

속에는 온갖 썩은 시체가 들어있는

회칠한 무덤이라고 하였습니다.

 

겉에서 보기에는 율법을 잘 지키고 깨끗한 것 같지만

속에는 더러운 욕심과 미움 및 온갖 악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 그들의 심령 상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 말씀하였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 주셨던 사람은

자신의 죄로 인하여 멀리 서서 하늘을 향해

고개도 들지 못하고 가슴 치며 기도하던 세리입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눅 18:11~14)

 

그리고 예수님은 이 세상에

그런 사람들의 친구로 오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세리나 창녀(자신의 죄로 인하여 슬퍼하는 사람들)에게

단 한 번도 잘못을 지적하거나 정죄하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의 후손인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옳고 그름 (선악)을 이미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지적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들을 질책하는 대신

그들을 품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발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 (요 8:10~11)

  

그리고 그러한 용서를 받은 사람은 주님의 사람이 되어 

끝까지 주님을 좇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성경 사건은 우리에게

영적인 원리를 잘 알려주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내 눈에 다른 사람의 실수나 잘못이 잘 보인다면

이는 절대로 내가 의로워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상관없이

내가 나를 의롭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입니다.

 

그리고 내 눈에 내가 의로워 보인다면

우리는 예수님보다는 사단에게

더 가까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왜냐하면 이는 우리 심령의 상태가

바리새인과 같다는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눈에

다른 사람의 실수가 잘 보이기 시작한다면,

또한 옳고 그름을 지적하여

다른 사람을 가르치고 싶어진다면,

그 때가 바로 우리 입에 파수꾼을 세우고

주님 앞에 엎드릴 시간이 되었다는

자명종 시계가 울리는 때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