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들고 찬송하면 뭐하나? 

혈기를 부리지 말아야지. 

아-멘을 크게 하면 뭐하나? 

말씀대로 살아야지. 

은혜를 잘 받으면 뭐하나? 

자아가 파쇄 되어야지. 

주의 일을 잘하면 뭐하나? 

순종이 안되는걸. 

신령하면 뭐하나? 

신실하지 못한걸.

성경을 줄줄 외면 뭐하나?

고집이 꺽여야지.


건축을 하려 하면 반드시 땅을 파야 하고 

땅속에 숨겨있던 암반층을 깨뜨려야만 한다, 

힘들고 더디다고 암반층을 그대로 두고 건축을 하면, 

빠른시공은 하겠지만 얼마있지 않아 부실시공 되어 곧 무너지고 만다. 


마찬가지로 영적 시공에 있어서도 중요한 것은 눈에 보여지는 

은사나 체험이나 봉사의 유무가 아나라 

보여지지 않는 내적변화 또는 내적 성숙이다. 

즉, 자아의 암반층을 깨뜨리는 것이다. 


영혼 구원은 믿음으로 단번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전인격적인 구원은 평생을 두고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성화라 부른다. 

어쩌면 우리는 영혼 구원에는 성공했을지 모르지만 

전인격적인 구원에는 실패하고 있는지 모른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데는 실패하고 있는지 모른다. 

신앙은 있는데 생활이 없고 

은혜는 많은데 변화는 없고 

체험은 많은데 성숙은 없고 

말은 잘하고 많은데 잠잠할때 잠잠하지 못하고 

신령은 한데 신실하지는 못하다. 


믿음이란 느끼고 체험하고 충성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믿음이란, 주님과 함께 동거하는 것이다. 

주님을 하루 24시간 의식하고, 주님을 누리고, 주님과 연합되는 것이다. 

부부생활이란, 남편은 돈벌어다 주고, 아내는 밥해주면 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생각하고, 나누고, 24시간 서로를 배려하고, 신뢰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와 동거하는 삶을 가능케 하는 것이, 복음적인 성령충만의 결과이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믿는 사람이 모자라고, 비젼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대로 믿는 사람의 부재이다. 

신령한 예배는 있는데 생활예배는 없다. 

기도실에서는 신령한데(뭘 보기도 잘하고, 듣기도 잘함)...! 

생활속에서는, 혈기와 짜증과 염려로 충만하다. 

가슴은 뜨거운데 마음은 냉냉하다. 

예배는 좋아하면서도 순종에는 인색하다. 

이와같은 신앙생활은 기초공사 없이 건물을 짖거나 

모래위에 세우는 집과 같은 것이다. 


문제 앞에만 서면 곧 쉽게 무너지고 만다. 

골리앗 앞에만 서면 부들 부들 떤다. 

홍해 앞에 다가가면 불평 천국을 이룬다.

건드리면 성질부터 낸다.

툭~ 하면 상처받는다.

끝없이 인정받으려 하고 대접받기만 좋아한다. 


환자중에 가장 불쌍한 환자는, 자신의 병을 자각하지 못하는 환자이다. 

내 병을 내가 느끼고 알면 회복내지는 완치될 수 있다. 

그러나 내병을 내가 모르고 있다면 회복은 불가능하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영적자각 능력을 상실한 것이다. 

마치 입 냄새를 자신은 모르듯이, 내 문제와 영적상태를 모르는 것이다. 

안다면 그렇게 시시하게 믿을 수 없다. 

안다면 그렇게 기도를 타성으로 할 수가 없다. 

안다면 그렇게 지독히도 자만할 수가 없다. 


환경이 문제가 아니다. 

조건이 문제가 아니다. 

사람이 문제가 아니다. 

도무지 변하지 않는 암반층과 같은 내 자신이 문제이다. 

내가 변하면 문제도 변한다. 

원수도 친구로 변하고

감옥도 천국이 되고 

움막에 살아도 궁궐을 이룬다. 

날 변화 시키지 못하는 예배가 어떻게 산 제사일까? 

날 성화시키지 못하는 은혜가 무슨 은혜일까? 

날 성숙시키지 못하는 기도가 무슨 응답이 있을까? 


주의 일이, 주님이라 착각하지 말라 

체험이, 주님이라고 붙들지 말라 

영적지식이, 주님이라고 자랑하지 말라 

진짜 주님은 

날마다 누리게 하신다. 

주와 하나되게 하신다. 

날마다 거룩한 바보되게 하신다. 

편하게 사는 것을 불편하게 만드신다.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말하게 하시고, 생각하게 하시고, 꿈꾸게 하신다. 

주님을 자랑하게 하시고, 세상보다 주님을 더 사랑하게 하신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지 잘 기다리고 참게 하신다. 

당신이 이런 삶을 산다면, 당신속에 계시는 그분은 진짜 주님이시다. 


우리의 영성은 우리가 모른다. 

이러므로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믿음이란 

내가 주님과 함께 동거함과 

주님으로 성화됨을 남들이 알도록 해야만 한다.

남이 나를 더 잘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