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을 판단하고 흉을 보는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성을
스스로 헤치는 자와 같다. 누가 우리 앞에서 어떤 사람에 대해서
흉을 보는 순간, 우리는 이 사람이 다른 곳에서는 우리 흉을 볼
것이라 의심하게 된다.
탈무드에 나와 있는 예화이다. 세 자매를 둔 사람이 있었다.
세 자매는 모두 예뻤으나, 그들은 각기 한 가지씩 결점이 있었다.
큰 딸은 게으름뱅이였고, 둘째 딸은 훔치는 버릇이 있었고,
셋째 딸은 험담하는 버릇이 있었다.
마침 그 이웃 마을에 아들 삼 형제를 둔 어떤 부자가 있었는데,
그 세 딸을 모두 자기네 집으로 결혼시키지 않겠느냐고 청해 왔다.
세 자매의 아버지가 자기 딸들이 가지고 있는 결점을 그대로 말하자,
부자는 그런 점은 자기가 책임지고 고쳐가겠다고 장담했다. 이렇게
하여 세 자매는 시집을 가게 되었는데, 시아버지는 게으름뱅이 첫째
며느리에게는 여러 명의 하녀들을 고용해 주었다. 남의 것을 훔치는
버릇이 있는 둘째 며느리에게는 큰 창고의 열쇠를 주어 무엇이든지
갖도록 해 주었다. 그리고 남을 헐뜯기를 좋아하는 셋째 며느리에게는
매일 같이 오늘은 험담할 것이 없느냐고 하며 그 소리를 들어주었다.
어느 날 친정아버지는 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사돈집을
찾아갔다. 큰 딸은 얼마든지 게으름을 피울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둘째 딸은 갖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가질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그러나 셋째 딸은 시아버지가 자기에게 무엇이든 꼬치꼬치 캐물어서
괴롭다고 말을 했다.
그런데 친정아버지는 자기 셋째 딸의 말만은 믿지 않았다.
셋째 딸은 그 순간에도 자기 시아버지를 헐뜯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험담하는 버릇은 쉽게 고칠 수 없었던 것이다. 험담이나 비판의 말을
하기를 조심했던 조선시대 황희 정승의 일화는 우리에게 좋은 귀감이다.
누렁 소와 검정소를 몰고 가는 농부를 황희 정승이 보고는 둘 중 어느
소가 일을 잘 하는지 물었다. 그때 농부는 소로부터 멀리 떨어져 횡희
정승에게 귀속 말로 “검정 소가 일을 잘한다.”고 말해 주었다.
황희 정승이 왜 귀속 말로 하냐고 물으니까 농부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한 소만 칭찬하면 다른 소가 속상하지 않겠느냐고.
미물일망정 귀가 있기에 말하기를 조심했던 농부의 지혜요 그 선한
인격을 보여준다 할 것이다. 험담은 버릇이다. 험담은 그 대상을 기분
나쁘게 할뿐만 아니라 자신 또한 천하게 만든다. 비판을 많이 하면
할수록 그것은 우리가 성숙해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나이가 들면 비판
의식이 줄어든다. 그 이유는 아무리 비판해도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또한 비판한 그 기준만큼 나도 잘 살 수 없으며,
자신의 판단이 오해이거나 틀릴 경우도 많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소중한 만큼 다른 사람에 대해서 말하기를 조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