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서로
서로서로란 말은 대단히 뜻 깊은 말이다.
여러 다른 것들이 합하여 하나가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즉 각 개체들이 한 단체를 이루는 단결의 힘을 보여줄 뿐 아니라
서로서로 화목하는 사랑의 즐거움을 보여주며
서로서로 조화의 미를 보여주는 말이다.
미란 아름다운 조화를 말한다.
음악에서 각각 다른 음을 가진 사람이 합하여 음을 낼 때 조화라 하고,
정원에 여러 가지 꽃이 모여 조화를 이룰 때 정원의 꽃이 아름답게 보인다.
사람들도 갖가지 성격과 재능을 가지고 서로 합하여 조화를 이룰 때
거기에 아름다움이 있다.
유대인의 철학자 마르틴 부버는 “나와 너” 라는 책에서
사람이란 서로서로 곧 나와 너와의 조화에서 유래되었다고 지적했다.
사람은 서로서로가 하나되어 성립되었다.
눈도 서로서로, 손도 서로서로, 입도 윗니와 아랫니가 서로서로,
코도 두 구멍이 서로서로, 다리도 둘이 서로서로 짝지어졌다.
둘이 서로서로 성립되지 못하면 병신이 된다.
나아가서 나 개인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서로 만나서 말하는 것을 대화라고 하며
서로서로의 마음이 맞는 것을 사랑이라고 하며,
서로서로 함께 동거동락 하는 것을 행복이라고 하고
서로서로 떠나가는 것을 분열, 불화, 싸움이라고 하며
서로서로 간의 자기의 위치를 지키는 것을 책임이라고 한다.
서로서로가 없는 경우에는 모든 것이 파괴가 된다.
이 우주를 보아도 낮과 밤, 어둠과 밝음의 상대성원리 밑에서 운행되고 있다.
종교는 하나님과의 연결이다.
신앙은 연결과 묶음과 맺음이고
은혜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줄로 묶어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줄이라 말하며,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골3:14) 라고 바울은 말하고 있다.
더 나아가 바울은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5)” 하면서
사랑을 띠로 표현하였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지으셨다.
그러므로 사람의 삶의 목적과 목표도 하나님을 향하고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을 사모하도록 창조하신 것이다.
그러나 범죄 한 후에 하나님과 서로 대화하며 교제하는 특권을 빼앗기고
서로서로의 사랑의 인격은 파괴되고 말았다.
이 빼앗긴 형상을 회복하고
교제를 새로 맺을 수 있는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기 위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