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멩이와 다이아몬드
영국의 한 젊은 신사가 아프리카 남단의 케이프타운으로 출장을 갔다.
근처의 한 가게에 들러 필요한 생필품을 살려다가 그 가게의 선반에 놓인 한 개의 돌을
발견하게 되었다. “주인장! 저기 선반 위의 돌은 뭡니까?”
가게 주인은 “네! 우리 아이가 저기 뒷산에서 주워 온 돌입니다. 버리기도 뭣하고 해서
그냥 거기에 놓아 둔 겁니다.” 하고 대답했다.
신사는 가게 주인에게 “그러면 혹시 제가 당신의 아이가 좋아하는 멋진 장난감을
하나 사 드릴테니, 저 돌멩이를 나에게 주시면 안 되겠소?” 하고 제안을 하였다.
“네! 뭐 그렇게 하지요. 안 그래도 귀찮았는데 잘 되었습니다.” 하며 가게 주인은
아이가 좋아하는 장난감과 그 돌을 바꾸었다.
그 신사는 그 돌을 가방에 담아 영국으로 돌아와서는 어느 보석 가게에 들러 그 돌의 가치를
문의했다. 보석 가게 주인은 깜짝 놀라며 150만 달러에 자신에게 팔 수 없냐고 제안을 했다.
그 돌은 최고의 가치를 지닌 다이아몬드 원석이었던 것이다.
그 신사에게서 다이아몬드 원석을 구입한 보석 가게 주인은 그것을 가공하여
700만 달러에 팔았다고 한다.
아무리 소중한 것일지라도 그 보는 눈에 따라서 흔한 돌멩이가 되거나 진귀한 보석이
되기도 한다. 바로 우리 옆에 있는 배우자나 자녀가 그렇지 않은가?
우리나라에 인물이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인물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중국의 한나라를 세우는 데 결정적 공헌을 하였던 대장군 한신은 항우에게는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았지만 한고조 유방의 손에서는 백만 대군을 호령하는 대장군이 되었다.
아니 멀리 갈 것도 없이 자기 자신 안에 있는 보물을 우리 스스로 돌멩이처럼 취급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은 다이아몬드와 같은 달란트를 주셨는데 우리 스스로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예수 그리스도 또한 그렇다. 유대인들에게는 예수님이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보였고,
현대인들에게는 좋은 교양이나 삶의 필요를 위한 액세서리처럼 보인다.
그러나 예수의 가치를 알아본 자들에게 예수는 더 할 수 없는 보물이다.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라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골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