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아 네가 어디에 있느냐?
유신론적 실존주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사람의 의식 밑바닥에 있는 것이
비교의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이것을 통해 자기 자신을 가늠합니다.
이 비교의식에 의해 행복과 불행이 갈라지기도 하고 삶의 동기를 얻습니다.
이 비교의식의 더 깊은 내면에는 날카로운 자기중심적인 자아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과 사람사이에는 아무런 간격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사람과 사람사이에도 서로 깊은 일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고 창조의 영광을 잃어버렸을 때 사람은 자기를 둘러싼 모든
관계에 대해 서먹한 남이 되고 말았습니다.
스스로 울타리를 둘러치고 그 경계 밖의 모든 관계에 대해 자신을 떨어뜨려
놓은 채 의식하는 고독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자기의 불안한
내면을 감추기 위해 도피하고 가리게 되었고 사람에 대해서는 이해관계와 자기
기준으로 서로를 재어보고 배타적이고 이질적인 감정이 생겼습니다. 비교의식은
이러한 토양에서 생겨난 잡초 같은 것입니다.
우월의식은 거의 질병의 수준인 불안한 내면에서 출발한 심리상태이고
열등감 역시 형태가 바뀐 교만함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이로 인해 끊임없이
다투고 미워하고 모략과 중상으로 서로를 해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인 사르트르는 인간의 심리 가장 깊은 곳에는
불안감이 내재되어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염려는 차치하고
라도 무엇인가 잘못되어진 것처럼 여겨지고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초조한 채무감 같은 것이 사람의 내면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성경은 첫 사람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거절했을 때 그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다고 진술한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부모의 사랑 안에서 평안하기만 하던
자식이 어느 날 심각한 죄를 짓고 부모를 속이고 나면 순식간에 불안감이 찾아옵니다.
사람들이 자기 인생이 의미로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음은 거의 알지못합니다.
누구든지 나이가 들어갈 수록 자기가 괜찮은 인생을 살아왔다는 것을 강변하려듭니다.
사람들이 옳은 것에 대해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가 하나님 앞에서 그릇된 자신을 만회
하려는 본능에 기인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여 숨은 아담을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여전히 나무그늘 같은 자기 울타리에 갇혀 불안해하고 자기의 수치를 감추려고
부부간에 조차 관계가 어그러지고 편치 못한 21세기 아담을 찾아 오셨습니다.
'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 ? '
당신은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지금 어디에 계십니까